지난 91년 앨범 ‘네버마인드(Nevermind)’ 한 장으로 90년대 젊은이들의 아이콘이 된 사람. 돈, 명성, 아름다운 아내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던 사람. 그룹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다. 그런 그가 94년 자신의 집에서 엽총자살을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모두들 궁금해 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 왜 죽음을 택했을까?” 200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엘리펀트’에서 삶과 죽음의 비극성을 탐구했던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차기작 ‘라스트 데이즈’에서 다시 한번 죽음을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세계적 록스타의 죽음을 다룬다. 감독은 이 영화가 커트 코베인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은 가상의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관객들은 금발의 록스타 ‘블레이크(마이클 피트)’의 생애 마지막 하루를 보면서 커트 코베인의 삶을 대리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종국엔 그를 이해하게 된다. 영화는 외딴 숲 속을 한 남자가 방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방황 끝에 그가 살고 있는 대저택이 나타난다. 그 곳에서 록스타는 하루를 온갖 기행으로 보낸다. 여자속옷을 입고 비틀거리며 증오의 눈빛으로 이곳 저곳을 배회한다. 그의 모습에는 삶의 절망이 깊게 묻어 있다. 그에겐 친구도 있고 함께 일하는 매니저와 공연관계자도 있고 그의 공연을 애타게 기다리는 팬들도 있지만 누구도 그 절망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기행을 하고 결국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영화는 그가 왜 절망하는지, 그의 절망이 어떤 것인지 단 한마디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대신 감독은 그의 고통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공감을 요구한다. 그의 아픔을 함께 느껴보라고. 죽음까지 이어지는 절망은 이런 것이라고. 구스 반 산트는 마약 중독자를 소재로 한 데뷔작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이래로 뿌리 뽑히고 소외된 청년들의 절망과 소외감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감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라스트 데이즈’는 이 시대 청년들에 대한 그의 애정과 관심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펀트’에서부터 이어져온 담담하면서도 실험적인 영상을 통해 이번에도 그는 젊은이들의 불안한 삶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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