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에 앞서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애매하다면 차라리 놀아야 합니다."
개발 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정부 경제 정책의 최첨단에서 일했던 김인호(사진) 한국무역협회장이 후배들의 정책 행위에 대해 정면으로 일갈했다.
김 회장은 3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행정고시 4회 출신인 김 회장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경제기획원·공정거래위원회 등 공직에 몸담으면서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발전사를 직접 겪었다. 김 회장은 우선 "정부에 30년 간 몸 담았지만, 나는 정부를 믿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했다.
이는 그만큼 시장의 힘을 신뢰한다는 의미다. 그는 "어느 나라에서든 정부는 해당 국가 국민의 평균 수준 정도의 역량을 갖고 있을 뿐이고, 모든 사회·경제적 이슈를 전부 해결할 능력은 없다"며 "대부분의 문제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해결하도록 놔두는 대신 시장이 잘 작동하는지, 정부가 나설 일이 있다면 어떻게 시장의 흐름을 깨지 않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정부가 시장 원리에 맞춰 구조개혁만 한다면 기업은 뛸 준비가 돼 있다"며 "기업에 좋은 것이 나라에 좋아야 하고, 그 반대 역시 성립하도록 해야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역업계에 대한 지원 역시 이 같은 방침 아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스스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어려운 중소·중견 기업은 정부가 나서 취약점을 보완해줘야겠지만, 직접적인 지원보단 제반 환경을 잘 갖춰두는 방향이 될 것"이라며 "예를 들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잘 알려주는 것이 최고의 지원책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6일 취임한 직후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던 그는 "중동에 다녀오면서 지금 우리 무역업계는 '제2의 무역입국'을 추구해야 할 단계고, 모든 준비는 갖춰져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메가 FTA에도 적극 동참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역협회는 올해 내수기업 830곳의 수출기업화를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중소 수출기업들이 한중 FTA 시대에 대비할 수 있도록 1:1 지원 창구인 '차이나데스크'를 운영하고 해외 역직구 추세에 맞춰 B2C 마케팅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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