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 반도체시장은 본격적인 치킨게임(chicken game)을 벌이고 있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최근의 글로벌 반도체시장 동향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치킨게임이란 두 자동차가 달리다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치킨(겁쟁이)이라고 놀림을 당하기 때문에 무모하게 버티다 목숨을 잃는 게임이다. 반도체 가격 급락에도 수요회복을 기대하며 버티고 있지만 선발업체들이 오히려 물량을 늘리며 후발업체들의 구조조정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전문가들은 후발업체의 생명시계가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구조조정 압력 ‘폭발 직전’=지난 2001년에도 이와 유사한 치킨게임이 벌어졌다. 당시 게임을 주도했던 곳은 미국의 마이크론. 이 회사는 채권 발행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무기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하이닉스 죽이기에 나섰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아이로니컬하게도 올해 치킨게임에서는 하이닉스가 주역이다. 첨단 반도체 생산기술인 80나노ㆍ65나노 공정을 무기로 삼성전자와 더불어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펴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이크론은 반도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하며 수세에 몰리고 있다. 대만의 난야도 수익구조가 악화된 상황에서 악전고투하는 모습이다. 반도체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요회복을 예측하고 라인 증설이 이뤄진 상황에서 선발업체든 후발업체든 누구도 물러서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이라며 “결국 상위업체들은 뒤따라오는 하위업체들이 버티지 못하고 구조조정의 단두대에 오르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누가 먼저 핸들을 꺾을까. 현재 상황에선 마이크론ㆍ난야 등 후발업체들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보유한 현금과 투자자금 조달로 당분간은 적자를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발업체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물량을 축소할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바짝 쫓고 있는 후발업체들이 이번 기회에 도태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물량을 축소해 D램 가격을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삼성전자는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보이고 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이천의 D램 라인인 M10라인의 40%를 연말까지 낸드플래시로 전환하는 등 수익성 회복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가동축소나 절대물량을 줄이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언제쯤 평화가 돌아올까=반도체 업계에서는 후발업체들에 대한 물량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완료되고 계절적 수요회복(PC 업체들의 수요)이 나타나는 시점을 하반기로 보고 있다. 물론 하반기라고 해서 7월부터 당장 D램 가격이 반등세를 탈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후발업체들의 구조조정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수요 측면에서는 인텔의 산타로사가 출시되며 다시 한번 윈도 비스타 효과를 기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승우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윈도 비스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하드웨어가 계절적 수요를 일으킨다면 3ㆍ4분기 D램 수요는 1억5,7000만GB, 4ㆍ4분기에는 1억9.400만GB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삼성전자도 시장 전체적으로 연평균 시스템당 메모리 채용량 (MB/system) 성장률을 기존 46%에서 52%로 수정했다.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2ㆍ4분기 윈도 비스타 등 수요회복 효과가 나타나며 반도체 실적이 턴어라운드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