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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원 위키드 패션사장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고요? 한국의 섬유기술과 디자인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김대원(49) 위키드패션 사장을 만나러 뉴저지주 칼스타트에 있는 공장을 찾았을 때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온 젊은 여성 디자이너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옷을 디자인하고 식당에서는 밥과 김치ㆍ미역국이 나왔다. 이 회사 직원 130명 가운데 100여명이 한국에서 바로 건너온 사람들이고 이들이 한국에서 터득한 섬유 및 의류 디자인 기술이 `사우스폴`이라는 유명 브랜드를 창출한 것이다. 위키드패션의 지난해 매출은 2억3,000만달러로 한해 전 1억2,000만달러의 두배 가까이 신장했다. 미국경제가 부진한 시기에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한국의 섬유기술과 새로운 디자인이 미국시장에 먹혀 들었기 때문이라고 김 사장은 설명한다. 올해 매출 목표는 3억달러로 잡고 있다. 너무 빨리 회사가 커질 경우 회사운영에 문제가 발생할 것 같아 올해는 성장보다 내실을 기하기로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섬유회사들이 공장을 허물고 아파트와 백화점을 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에서는 인건비 하나로 수익성이 없다고 하지만 한국 섬유산업의 전체적 가치는 세계 제일의 수준입니다. 섬유산업을 패션화ㆍ브랜드화할 경우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기술과 지식ㆍ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한국인이라는 게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이 불황기에 짧은 시간에 고속성장한 비결은 힙합의 대중화에 있다. 미국 동부 흑인들 사이에 유행하던 힙합 의류를 도시 백인층과 히스패닉ㆍ아시안들도 입을 수 있도록 새로운 장르로 만들어 시장을 공략, 성공했다. 이제 사우스폴 브랜드는 미국의 어떤 브랜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경제전문잡지 포브스지가 최근호에서 표지모델로 우연히도 사우스폴을 입은 젊은이들을 쓸 정도로 미국인들의 대중상품이 됐다. 사우스폴은 김 사장이 지난 95년 당시 한국탐험대가 남극을 정복하는 것을 보고 `한국의 혼을 가진 우리도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창안한 브랜드명이다. 사우스폴의 매출은 신생 브랜드로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매년 30~40%씩 꾸준히 성장했다. 그는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한국에서 수입했다. 위키드패션의 핵심부서인 디자인실에는 한국에서 온 20명의 여성 디자이너들이 컴퓨터로 디자인하고 옷감을 마른다. 1년에 두번 있는 제품개발 시기에 김 사장은 한두달 정도를 회사에서 먹고 자며 밤새 토론한다. 야전침대도 사무실에 있다. 그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 섬유인들의 저력을 알고 있다. 위키드패션이 개발한 디자인은 전세계에 깔려 있는 한국인 기업에 넘어간다. 한국은 물론 중국ㆍ베트남ㆍ파키스탄에 있는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사우스폴 브랜드의 옷이 만들어진다. 위키드패션은 JC페니ㆍ시어스 등 미국의 유명 의류전문점에 납품하고 별도로 10개 판매지부를 두고 있다. 미국인들이 사우스폴을 좋아해 주문이 많이 들어오지만 달라는 대로 주지는 않는다. 특정 유통업체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다. 김 사장은 “주문대로 주지 않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다”며 “생산한 물건을 파는 것보다 팔지 않는 게 더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의류체인점인 JC페니로부터 대상을 받았다. 김 사장은 텍사스 댈러스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 앨런 콰스트론 JC페니 회장과 나란히 앉아 1,300명의 참석자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을 때 한국 섬유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위키드패션은 미국 최대 소매체인점인 월마트에 물건을 넣지 않는다. 고급화를 추구하는데 중저급 옷을 쌓아놓고 파는 곳에는 물건을 줄 수 없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어느 분야에서든 고급화하면 경쟁력이 있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1년에 두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의류전시쇼인 `매직쇼`에서 고객을 집중 공략하는 게 그의 전략이다. 올해는 직원의 절반에 가까운 70명을 쇼에 보냈다. 동생인 김광원(40)씨도 유통업체 직원으로 현장업무를 익힌 뒤 고급 쇼핑몰에 28개의 점포를 갖춘 유통 체인업체를 키워냈으며 올해 8,000만달러의 매출을 목표로 잡고 있다. 광원씨는 형의 공장 옆에 회사를 두고 위키드패션의 사업전략회의에도 참여, 형의 일을 밤새 도와주는 등 뜨거운 형제애를 발휘하고 있다. 김 사장은 미국판매에 그치지 않고 한국ㆍ일본ㆍ유럽에도 수출하고 있다. 미국에서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제작한 한국 섬유기술 제품이 한국에 역수입되고 있는 것이다. ■ 경영철학과 스타일 김대원 사장은 사무실에 주역의 `숭덕광업(崇德廣業)`이라는 구절을 액자에 넣어 걸어놓고 있다. 덕을 쌓아가면 사업은 순탄해진다는 뜻이다. 김 사장은 “이민 초기 먼저 이민 온 `좋은 선배`들 덕분에 사업을 시작했고 한국의 섬유산업과 연계해 사업을 키울 수 있었다”면서 “이제는 남을 돕는 일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40대에 큰돈을 번 만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취지다. 그는 “패션 산업을 해서 번 돈을 한국섬유의 자존심을 알리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취지에서 최근 동생 김광원씨와 함께 110만달러로 `킴 파운데이션`이라는 공익재단을 만들었다. 5년 내에 이 재단을 1,000만달러 규모로 키울 계획이다. 처음에는 혼자 500만달러를 출연할 생각이었는데 동생도 그만큼 내겠다고 나서 규모가 두배로 불어났다. 김 사장 형제의 재단은 미국 동부 한인사회에서는 최대규모다. 패션과 의류 디자인 계통에서 공부하는 한국 유학생들을 주로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류 디자인을 연구하고 한국에서 온 여성 디자이너들이 행여 미국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늘 걱정한다. 기업 스타일도 가족분위기가 강한 한국적이다. 직원들의 보수도 동종기업보다 높다는 것이 주변의 평.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23세 때 미국에 건너와 야채가게 등을 하며 갖은 고생을 다했다. 야채가게에서 성공하지 못한 그는 미국의 코만스포츠웨어라는 회사에 취직, 섬유산업에 눈을 떴다. 그는 한국의 섬유기술을 미국시장에 접목할 생각으로 위키드패션을 창업했다. 그는 “기계공학을 한 사람이 의류를 얼마나 알겠는가”라며 “열심히 하는 것 외에 개인적인 장점이 없다”고 겸손해했다. ▲54년 인천 ▲인천 송도고 ▲단국대 기계공학과 ▲77년 미국 이민 ▲코만스포츠웨어 3년간 근무 ▲91년 위키드패션 창업 <뉴저지(미국)=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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