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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덕수궁에서 열린 피카소전에 대한 감흥이 지금도 생생하다. 회화의 해체를 몸소 보여준 파카소의 파격적인 예술 세계는 진한 감동을 주었다. 오랜만에 더욱 풍성한 작품으로 ‘위대한 세기: 피카소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궁금함을 참기 어려왔다. 다음 작품 ‘라디오스타’ 촬영을 끝내고 잠시 머리를 식힐 겸 그와 만나기로 마음먹었다. 운치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돌면서 도심 속 작은 정원처럼 꾸며진 서울시립미술관은 매력적이다. 미술관에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피카소의 예술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에 그려졌다. 타고난 테크닉의 소유자임에도 보는 것 외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내려는 피카소는 최고의 화가다. 남이 해본 걸 다 해보고, 그것도 모자라 남이 안 해본 걸 다 해본 그는, 분명 과욕의 소유자다. 동양화를 전공했던 나는 20세기 전체를 관통한 그의 미술 세계를 못내 흠모해왔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의 하나인 ‘아비뇽의 처녀들’같은 작품은 어디 있을까? 혹시 그가 아홉살 때 처음 그렸다는 어머니의 발 데생 그림을 만날 수 있을까? 전시실에서 처음 날 반긴 건 바로 예술 세계를 담은 그의 고백이었다.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말. 영화를 만드는 것도 사실 그의 말과 닮아있다. 보는 것을 스크린에 담는 것보다 화면의 행간을 통해 사상을 담아내는 것, 그게 바로 영화가 아닐까? 전시실은 피카소의 생애 나이의 흐름에 따라 작품이 배열돼 있어 그의 작품 세계의 변화를 금세 체험할 수 있었다. 양복을 만들어준 대가로 양복사의 가족을 그렸다는 청년기의 그림 ‘솔레르씨 가족’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우는 여인’ ‘노란벨트’ ‘거울 앞의 잠자는 여인’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2층과 3층으로 이어지면서 7개의 시기별 대표작 140여점이 전시된 이번 피카소전은 국내 최대 규모의 ‘피카소 회고전’이란 말을 실감케 했다. 가까이, 혹은 멀리서 찬찬히 감상해본 그의 작품은 근대 미술의 말기 미학의 신개척자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화려한 색채와 묘사가 돋보이는 젊은 시절 그의 작품부터 단순해진 선과 질감 안에 힘을 함축한 70세 이후의 작품속에는 거장 피카소의 예술 세계가 한눈에 조망됐다. 자전적인 그림과 인물화를 많이 그린 피카소는 유난히 자신의 여인의 그림을 많이 그렸다. 두 번의 결혼임에도 그의 삶에 빠뜨릴 수 없는 도나 마르, 프랑스와즈 질로 등 그의 7명의 연인을 화폭을 통해 생생히 만날 수 있었다. 첫번째 아내인 올가가 이혼을 해주지 않아 그녀의 모습을 기묘하게 묘사한 ‘라 댄스’같은 작품이 주를 이루는 피카소의 작품 세계는 굉장히 사적이다. 사랑하고 다투고 헤어지는, 보통 남성의 신파가 그대로 그림에 묻어나있는 느낌이다. 사회적인 문제를 담은 작품이라곤 ‘게르니카’ 등 몇 편에 불과할 정도다. 남성이 아닌 여성의 그림을 유난히 그린 피카소는 어찌보면 여성 탐험가다. 피카소는 그의 고백대로 성욕에서 에너지를 찾은 화가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윈 방황이 아마 그의 여성 탐험의 기원인지 모른다. 모성이든, 혹은 욕정이든 그의 여성에 대한 천착은 화폭에 그대로 녹아있다. 62년작 ‘앉아있는 여인의 흉상’은 여성의 외피를 벗어나 급기야 여성의 난소 등 신체기관으로 여인의 모습을 그려낼 정도니 말이다. 피카소전을 둘러보면서 다시 한번 그가 얼마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됐다. 보이는 것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평면적인 표현의 한계를 극복한 그의 입체적인 그림은 영원한 감동의 대상이다. 26세의 나이로 서구 미술의 오백년 전통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그의 작품 세계는 바로 도전이었다. 사회적 약속을 깨뜨리는 것, 바로 그 희열이 피카소를 자극한 예술혼이 아니었을까? 피카소는 어떤 형태로든 반복과 나태를 보여주지 않았다. 분명 그는 영화 만드는 일에 빠져 사는 나에게 결코 열정을 잃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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