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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錄, 김우중신화의 몰락] <제3막 5장>GM 스토리: 千日夜話②

"GM이 칼자루를, 채권단은 칼날을 쥔 협상"



2000년 9월14일 밤. 대우센터 빌딩 25층에 불빛이 환하다. 오호근 대우 구조조정추진협의회 의장의 집무실. 기업구조조정위원장에서 자리를 옮긴 지 벌써 반년이 넘는 사이,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대우차 매각에 매달렸다. 요 며칠 그는 불길한 예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날도 탁자에 놓인 살렘 담배에 연신 손이 갔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다. 메시지가 올 때가 됐는데…. 전화기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는 대우차 인수와 관련한 포드 이사회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1시30분. 전화벨이 울렸다. “미안하게 됐소.”, 온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허망한 게임은 이미 두달 전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 지 한 달 후인 2000년 7월. 우리 협상단은 외신을 타고 들어온 소식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 해 여름을 뜨겁게 달군 파이어스톤사의 타이어 결함문제가 터진 것이다. 2년 전 GM파업의 악몽이 재현되는 듯했다. “하필 (포드가)파이어스톤을 왜 썼느냐”에서 불거진 문제는, 탑재 차량에서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은폐했다는 의혹으로 번졌다. 포드 주가는 한 달도 안돼 40% 이상 떨어졌다. 수십억 달러를 들여 주가를 끌어 올리는 동안 그들은 대우차를 인수할 돈을 한꺼번에 날렸다.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이사회가 동의할 리 없었다. 협상에 참여했던 한 팀원은 ‘알려진 사실’외에 포드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를 털어 놓았다.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제기돼온 헐값 매각과 국부 유출론으로 연결된다. “포드는 실사를 진행하면서 당혹해 했어요. 뚜껑을 여니 대우차 가치가 기대를 너무 밑돈 거죠. 하지만 이미 우리 당국자(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가 70억 달러를 써냈다는 사실을 자랑하듯 발표해버렸으니…. 물론 그들도 매입액을 내면서 ‘조건을 충족하면’이란 가정을 달기는 했죠. 그걸 국민이 신경 쓰나요. 아니나 다를까. 정상 가동하려면 30억달러를 추가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그만큼 매각 가격이 빠지는 셈이죠. 그렇다고 그렇게 낮춘다고 해 보세요. 여론이 가만 있을리 없지. 포드 스스로 그걸 잘 알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망신만 당하고 물러날 것으로 생각한 거죠.” 문제가 생기면 ‘희생양’이 필요한 게 통례. 협상이 결렬되자 “우선 협상자를 한 곳만 정해 낭패를 보았다”는 비난이 들 끊었다. 협상단의 고위 인사는 최근 그 속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우선협상자로 선정되면 매각 물건의 조직, 자산 규모, 기술개발 심지어 상표권, 특허권 등을 전부 검토합니다. 협상자를 복수로 선정하면 모든 비밀을 인수하지 않는 곳에도 줘야 합니다. 쓸데 없이 회사의 비밀이 두루 노출되는 셈이지요. 이리 저리 협상하다 시간만 끌게 되면 기업가치도 떨어구요.” 어찌 됐든 포드 카드는 이제 사라졌다. 남은 것은 GM뿐. 오 의장은 결렬 통보를 받은 그날 아침 7시 GM에 연락을 취했다. 3시간 뒤 GM측 인사들과 만났다. “다시 협상을 시작해보겠습니까.” ‘OK’. 양측은 일주일만에 새 양해각서(MOU) 내용에 대략적인 합의를 이뤘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오 의장의 설명을 들으면 조금은 납득이 간다. “우선협상자를 선정해도 언제 깨질지 몰라요. 더욱이 포드의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그들이 대우차 전체를 인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인수 대상에서 빠지는 곳은 다른데 팔아야 하잖아요. GM과 단절할 이유가 없었죠. GM도 포드가 인수를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연락을 유지하길 원했습니다. 실사 내용 중 대외에 발표해도 될 수준은 알려줬구요. 포드도 그 사실을 알았고 투명하게 처리돼 문제될 것은 아니었습니다.” GM과 다시 시작된 협상. 하지만 우리는‘닭 쫓던 개’ 신세였다. 현대차마저 대우차에 등을 돌린 상황. GM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 할 형편이었다. 대안이 없는 걸 뻔히 안 그들이 서두를 리 없었다. 10월7일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지만, 그들은 너무나 느긋했다. 칼집은 잡은 것은 GM이었고, 우리는 그들의 칼날 위에서 놀았다. 모든 것을 그들의 요구에 맞춰야 했다. 고강도 자구계획. 그 해 10월17일 이종대 회장 체제가 출범했지만,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연일 노조와 충돌이 이어졌다. “(자구안에)노조 동의서가 없으면 부도 처리하겠다”(엄낙용 산업은행 총재)고 최후 통첩을 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11월 8일 최종 부도. 노사는 11월30일 법정관리에 들어가서도 계속 싸웠고, 이 회장은 결국 1,750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말았다. 화염병까지 등장하는 상황, GM은 추후 협상에서 부평공장 인수 조건으로 “파업일수가 전세계 GM 사업장의 평균 아래여야 한다”는 ‘굴욕적인’ 내용을 내걸었다. 할 수 없이 살을 도려내는 구조조정으로 GM에 애걸했지만 그들은 너무나 냉정했다. GM이 진심으로 입질을 시작한 것은 이듬해인 2001년 5월. 대우차가 2년10개월 만에 67억원의 이익을 낸 뒤였다. 대우차 관계자의 회고는 서글픔마저 느끼게 한다. “GM 사람이 정말 이익을 냈냐고 놀랍다며 물어 보더군요. 구조조정하느라 고생했다나 어쨌다나….” 5월29일. GM은 메리어트호텔로 우리 협상팀을 불렀다. 공식 인수제안서 제출 전에 내용을 설명하겠다는 이유였다. 협상팀은 기대에 부풀어 호텔을 향했다. 한 협상단원은 그때 기분을 이렇게 말했다. “입에서 욕만 나오더군요.” 그랬다. 그들은 피를 묻히며 ‘상품’을 갈고 닦은 우리의 노력을 송두리째 무시했다. 죽어라고 사람을 자른 부평공장은 아예 인수대상에서 뺐다. 가격은 입찰 때의 4분의 1인 10억 달러도 채 되지 않았다. “제안서 접수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격앙된 의견이 우리측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어쩌랴, 당시에는 대안이 없었다. 하물며 그들의 협상안 조차 외부에 알릴 수 없었다. 형편없는 조건에 여론이 그냥 있을 리 없었고, 부평은 그날로 뒤집어질게 뻔했다. MOU를 체결하는데 2주면 될 것이란 기대는 애초부터 허황된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MOU를 체결한 것은 9월21일이 돼서 였다. “현금으로 4억 달러를 출자해 신설법인을 설립하고….” 인수대상은 군산ㆍ창원공장과 22개 해외 판매법인 등으로 한정됐다. 부평공장은 ‘6년 이내 일정 조건을 갖추면 인수 여부를 추후 결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나마 감지덕지했다. 가히 GM다운 협상 기술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날 GM이 아니었다. 본계약까지 넉달간의 배타적 협상기간을 정한 뒤 또 다시 정밀실사에 들어갔다. 물건이 튼실하지 못하니 결함은 곳곳에서 발견됐다. 12월 중순. GM은 16억달러의 우발 채무를 발견했다며 애프터서비스를 해준다는 보장을 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총 매각대금이 20억달러인데 16억달러를 토해내라니…. 연내 본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기대는 또 다시 물거품이 됐다. GM은 2002년 2월6일이 돼서야 최종 제안서를 내놓았다. “24개 해외법인 가운데 9개만 인수하고 인수대금도 12억달러에서 8억5,000만달러로 깎겠다.” MOU의 틀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는 협박까지 하고 나섰다. 파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우리도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포드 꼴’나기 십상이었다. 미국ㆍ일본 업체들에게 인수 의사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벼랑끝 전술이었다. 소식은 당연히 GM에게도 들어갔다. 다행히 전술은 통했다. GM이 바뀌기 시작했다. 3월 힐튼호텔의 최종 협상은 이렇게 시작됐다. 3월15일 새벽 5시. 호텔을 나오는 우리 협상팀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지리한 협상에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GM은 조건을 또 내걸었다. “유럽에서 초기엔 대우 브랜드를 사용해도 몇 년 뒤에는 바꿀 수 있도록 조항을 넣자.” 대우 상표마저 없애자니, 우리를 ‘하청기지’로 바꾸겠다는 소리였다. 버텼지만 별수 없었다. 2002년 4월30일. 99년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꼬박 1,000일 만에 협상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GM으로선 그들을 끝까지 괴롭혔던 김우중 회장의 망령에서 비로소 벗어났지만, 김 회장이 남기고 간 대우차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너무나 쓰라렸다.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던 4월10일,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는 이렇게 토로했다. “GM이 칼자루를 쥐고 우리는 칼날을 쥔 협상이었다.” 그러나 GM에게 칼자루를 쥐어준 것은 김 회장과 우리 정부, 그리고 국민이었다. 적어도 40억 달러를 받을 수 있다던 물건 값이 4억 달러로 내려간 것도 우리 스스로의 무지가 빚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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