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베팅하라.'
외국인들이 극심한 업황 침체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한창인 대형 증권사의 주식을 이달 들어 꾸준히 사 모으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코스피지수 상승을 이끌고 있는 외국인이 증권업황의 리트머스인 증권업 주식을 사는 것은 주식시장을 밝게 전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이 현재의 국내 증권업 상황을 바닥으로 인식, 저가매수에 나서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삼성ㆍKDB대우ㆍ우리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이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선 것을 증권업종 주가가 바닥을 쳤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건비 등 판매관리비 비중이 높은 증권사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내실을 기하면 실적도 자연스레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7월 들어 이날까지 삼성증권 215억원, KDB대우증권 45억원, 현대증권 17억원, 한국금융지주 62억원을 순매수했다.
지난달 삼성증권만 132억원 순매수한 반면 KDB대우증권 73억원, 현대증권 62억원, 한국금융지주를 40억원 순매도한 것과 완전히 다른 투자패턴을 보이고 있다. 이달 들어 외국인의 매수세가 꾸준히 유입되면서 삼성증권(1.5%), KDB대우증권(1.4%) 등 증권사의 주가도 소폭 오르거나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전문가들은 외국인이 최근 증권업종 투자를 꾸준히 늘리는 가장 큰 이유로 저렴한 가격을 꼽고 있다.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이들 증권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삼성증권 1배, KDB대우증권 0.8배, 한국금융지주 0.8배, 현대증권 0.4배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삼성증권을 제외한 다른 대형 증권사들의 주가가 장부가치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는 것이다. 황윤정 신한금융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증권사들의 주가는 밴드 하단으로 일부 증권사는 사상 최저가일 정도로 매우 저평가돼 있다"며 "외국인들이 트레이딩 관점에서 지금이 바닥이라고 보고 매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달 초 삼성증권을 필두로 주요 대형 증권사들이 잇달아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내실을 강화한 것도 외국인 투자를 유인하는 요소로 꼽힌다. 인건비 등 판관비 비중이 높은 증권업의 특성상 고정비용을 줄이면 그만큼 이익은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고은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증권사의 비용절감 노력은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으며 최근 대형사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에까지 다다랐다"며 "특히 삼성증권의 경우 인력과 점포를 대거 줄이면서 비용절감 효과가 커 실적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에 따른 수혜와 정책적 지원, 우리투자증권 매각에 따른 업계 지각변동 등 하반기에 예정된 이벤트들도 증권업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소재다.
금융 당국은 이미 올 하반기에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구체적인 완화 방안이 나오면 증권사의 해외 진출, 자산성장 등 자본활용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 8월29일 개정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 증자를 단행했던 대형 5대 증권사는 혜택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황이 부진하고 노하우가 일천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기적으로는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대출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진형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하반기에는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완화를 넘어 정책적 지원이 기대되기 때문에 추가적인 업황 둔화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현재 박스권 하단에 위치한 증권사 주가는 단기적으로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투자증권 매각에 따른 다양한 주가흐름 변화도 예측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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