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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코리아] 1부. 혁신만이 살 길 <4> 이분법 프레임에 갇힌 사회

1부. 혁신만이 살 길

대 - 중기, 수도권 - 지방 사사건건 편가르기 … '평등 함정' 벗어나야

규제완화 등 건전한 논의 조차 막아 기업활동 위축

다분법 시대 맞게 합리성 살려 동반성장 대타협을


지난 2006년 12월, 당시 한나라당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강원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수도권 규제완화 문제는 수도권이냐 지방이냐의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수도권에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면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규제를 통한 지방 발전'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수도권과 지방이 각자의 강점을 살리면서 자율적으로 발전해나가는 동반성장의 프레임을 역설한 것이다. 그로부터 7년여가 지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지만 '수도권 대 지방'이라는 대립구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팀 수장인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경제활성화를 위한 '입지규제 완화'를 들고나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다만 '(지역이 아닌) 기능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입지규제 완화를 지역별로 접근하면 당장 '수도권 대 비수도권'이라는 정치적 대립구도에 갇혀 정책추진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는 만큼 기능별 규제완화라는 다른 접근방식을 택하겠다는 뜻이다.

일견 그럴 듯해보인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그의 발언은 '수도권 대 비수도권'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다가오지만 수도권 규제완화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분법적 프레임이 성장의 발목을 잡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기업-중소기업, 사용자-근로자, 고소득자-서민 등 우리 사회에는 건전한 논의를 가로막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다.

◇극단의 프레임에 빠진 대한민국=프레임에 갇히면 합리성은 통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주장에는 귀를 닫고 오직 자기 진영의 목소리만 정당하다. 광장 속에서 울려 퍼지는 두 진영의 극단의 발언은 상대방을 고꾸라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즉생'의 논리만 남는다.

극단의 프레임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갈수록 정도는 심해지고 있다. 전통적인 대립의 프레임이었던 '노-사'의 대립은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노동계는 더 좋은 고용조건에 대한 목소리를 키우고 있지만 고용의 주체인 기업들과의 대화는 거부한다. 반면 기업들은 '고용 유연성 확대 우선'이라며 방어막을 치기에만 급급하다. 노동시장은 더 나아가 계약직, 임시직, 아르바이트, 시간제 근로자 등으로 다양화되는데 여전히 '정규직 대 비정규직'이라는 공식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노동계 내부에서의 해법찾기가 난망한 것도 이런 '구조적으로 이분화돼 있는 관계' 탓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폐지되기는 했지만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둘러싼 논란은 '부자 대 서민'의 편가르기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 부자를 겨냥한 양도세 중과가 부동산 침체기에는 오히려 매매시장을 위축시켜 서민들을 옥죈다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인데도 '부자감세=보수' '부자증세=진보'라는 공식에 수년간 발목이 잡혔다.



중국이나 미국으로 따지면 한 개 성, 혹은 한 개 주 크기에 불과한 대한민국은 지리적으로도 수도권-비수도권의 극명한 대척점을 만들고 있다. 낚싯대 제조업체인 A사는 중국 칭다오의 공장을 폐쇄하고 한국으로 유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이전부지로 검토하고 있는 강화일반산업단지가 수도권에 속해 있어 공장이전을 하더라도 유턴 기업에 주어지는 각종 세제혜택을 받지 못하는 탓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각종 규제 및 지원 차이가 유턴 기업의 공장이전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분법적 규제체제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은 경기도의 낙후지역. 강화도·동두천시·여주권·연천군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지역은 생활환경이 전국 평균에 못 미치는데도 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개발에 제약을 받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의 김은경 박사는 "수도권 규제-비수도권 지원이라는 이분법적 정책은 비수도권의 발전이라는 정책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수도권 발전마저 가로막고 있다"며 "수도권 규제를 풀되 비수도권은 각 지역 특색에 맞게 지원해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분법 프레임에 대한 경고…10년간 직접투자 순유출액 1,200억달러=2004년 이후 직접투자 순유입액은 9년째 마이너스다. 해외로부터의 직접투자보다는 해외로 투자하는 국내 기업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의 직접투자가 순유출이 많다는 의미인데 누적규모는 1,196억달러에 이른다.

해외로부터 투자는 줄고 해외로의 투자가 늘어나는 데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이겠지만 갈수록 양극단화되고 기업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적 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다는 게 기업계의 분석이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재벌이나 대기업을 적으로 규정하는 분위기, 수도권-비수도권에 대한 극단화된 접근방식 등 기업이 정상적으로 활동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떠나는 기업이 늘어나는 이유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분법적 프레임이 강화되는 데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다분법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대타협의 지혜, 차이를 인정하는 의식 없이는 대한민국이 한계를 맞을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다.

사회학자인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너는 어느 쪽인가'라는 이분법의 시대는 가고 다분법의 시대가 도래했다"면서 "재벌해체 논란 역시 이념투쟁으로 흐르기 쉬운데 재벌에 세계무대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질주하고 세계화에 대한 '방화벽'을 만드는 '경쟁력 증진'과 임금생활자 보호에 동참하는 '사회적 책임'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주문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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