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실제 의회 권력은 행정부를 압도하는 수준을 넘어 짓누르고 있다. 갑을 관계를 넘어 주종 관계라는 말까지 나온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각 부처 차관과 1급들을 앉혀놓고 면박을 주기 위한 군기 잡기에 으름장은 기본이다. 경제부처 B 과장은 "어떤 의원들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다"며 "과연 국민의 대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전한 상식과 생각을 가지신 분들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좌관이 의원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거나 갑질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한 의원의 보좌관은 경계 대상 1호로 분류된다. 정책을 설명하는 회의를 앞두고 벌어진 실제 사례다. 정부 부처 C 국장은 "ㅁ자형 테이블의 중간에 앉아 있는데 뒤늦게 들어와 한쪽 끝에 앉으면서 상석도 제대로 모르냐며 호통을 쳤다"며 "결국 원하는 대로 맞은편으로 앉고 과장들은 옆에 배석시키고서야 회의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자료를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국정감사 시기를 이용해 개인적인 자료 민원을 해결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일명 국감 요구자료에 개인이 필요한 자료를 끼워넣는 경우다. 정부 부처 D 과장은 "재정이나 외환·수출 등 경제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요구할 때 의원 비서관이나 보좌관 지인들의 부탁이라는 감이 올 때가 있다"며 "대부분 석·박사 학위 논문 통계용 자료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보좌관 출신의 한 의원은 지역구 현안으로 공무원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정부 부처 E 과장은 "틈만 나면 지역구에 담당 국장과 실장, 심지어 차관까지 불러 국비지원을 요구한다"며 "여러 차례 주장했는데도 관철되지 않자 국감에서 근거 없는 얘기로 차관을 망신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국회의 힘이 커진 것은 정부가 정책으로 추진하는 법안의 대부분이 의원입법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현실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상 정부가 먼저 요청하는 청부입법이 많지만 민원에 휘둘리거나 아니면 말고 식 건수 채우기 입법도 적지 않다. 정부입법보다 관련 절차가 짧아서 제도시행이 시급할 때 한다는 이유를 대지만 사실상 국회의 도움 없이는 법안 통과가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정부 부처 F 과장은 "정부입법의 90% 이상이 의원입법을 통해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입법의 대부분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수정되거나 틀 자체가 바뀌는 것도 의원입법이 늘어나는 또 다른 이유다. 현재 국회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해당 법안은 전남 광주 소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법인으로 할지, 국가기관으로 할지가 쟁점으로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제동이 걸렸다. 당초 정부는 법인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제출했지만 법안 심사소위를 거치며 의원들의 논쟁 끝에 국가기관으로 지정되고 재정을 지원하는 내용까지 법률에 명시한 수정안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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