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고금리와 환차익을 노리고 신흥국 채권을 사들여온 투자자들이 최근 빚어진 국제금융시장 불안의 최대 피해자로 떠오르고 있다. 신흥국들이 금융불안과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낮추고 이들 국가의 통화가치가 줄줄이 추락하면서 해당국 통화로 표시된 국채에 투자했던 외국인들이 채권 가격 하락과 환손실의 이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27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시장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JP모건의 GBI-EM전세계다각화지수를 기준으로 할 때 올 들어 신흥국 통화표시 채권의 총 수익률은 -12.3%로 공시됐다"며 "신흥국 통화표시 채권을 사들였던 투자자들은 최근 (금융시장) 투매사태의 최대 피해자(loser)"라고 보도했다.
특히 위안화 표시 해외발행 채권인 '딤섬본드' 투자자들이 울상이다. 중국 통화인 위안화 가치가 최근 하락하면서 딤섬본드 가격도 평균 5.7%나 추락했기 때문이다. 딤섬본드의 가격 추이를 나타내는 FTSE-BOCHK 해외발행위안화표시채권지수는 이달 위안화 평가절하 이후 현재까지 4.5% 떨어졌다. HSBC홀딩스 애널리스트인 크리스털 자오는 "현재 딤섬본드에 대한 압박 요인은 환율 리스크"라며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가치는 더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익률 하락은 자금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펀드평가 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올 들어 7개월간 신흥국 발행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에서 인출된 자금만도 13억달러에 달한다.
현재 자국 통화표시 외화표시 채권 발행에 앞장서고 있는 신흥국은 중국과 브라질·러시아·인도·싱가포르 등 일명 브릭스(BRICs) 국가다. 그러나 중국 등은 자국 통화표시 채권의 대부분을 자국민이 보유하는 구조여서 상대적으로 국제시장으로 위기가 확산될 우려는 적다. 반면 멕시코·폴란드·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남아프리카의 경우 사정이 심각하다. 이들 국가에서 발행된 현지 통화표시 채권의 30%(2013년 말 기준) 이상을 외국인투자가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유가 하락, 정치불안, 경기침체 등 3중고로 통화가치 폭락을 겪고 있어 국채 등이 부도 날 경우 채권시장 등을 타고 경제위기를 전 세계로 전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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