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아침을 열며] 노사정에 드리는 글

이승훈<이승훈.서울대교수.경제학>노사정(노사정)협의회가 오늘(15일) 어렵게 출범한다. 대기업구조조정과 정리해고제 도입, 그리고 정부간섭의 대대적 축소작업을자발적으로 해보자는 뜻일텐데 그것이 쉬웠겠는가. 어느 한편도만만치 않은 세 집단이 어쩔 수 없이 만나 합의를 이루어내야한다. 순조로울 리 없다. 강력하면서도 합리적인 리더십이 그어느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역시 정리해고제 문제로부터 논의는 시작될 것이다. 전세계에유례가 없을 정도로 경직된 우리의 노동시장은 확실히 정상적인것이 아니다. 사(사)측은 기회있을 때마다 고임금과 노동시장의비정상적 경직성을 줄곧 문제삼아 왔다. 과연 우리의 임금수준은국제적으로 보아도 높았고 노동조합은 강력하다. 그러나 노(노)측은부당한 노동탄압에 대항하여 권익을 쟁취해온 지난날의 자세를완강하게 지키고 있다. 노사간의 불신은 그만큼 뿌리깊다. 개발시대의 노동정책은 어떠한 파업 움직임도 용납하지 않고분쇄해 버렸다. 88올림픽 이후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노사분규치고어느 것 하나 합법적인 것이 없었다. 그래도 국민정서는 노측에동정적이었다. 저임금노동자의 분노를 수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연중이나마 노측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기에 사측은 요구의대부분을 수용하였고 정부는 묵인하였다. 오늘의 고임금과 경직된노동시장은 그동안 노측이 법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결과 형성된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묵은 빚에 이자까지 붙여 받아내려한 분노가 빚어낸 작품이다. 합리적일 수 있겠는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정부의 적극적 개발지원정책과 기업의선구적 시장개척활동이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각종 지원정책의부담을 묵묵히 견뎌낸 저임금 근로자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어림없는일이다. 노사정이 합심하여 이룬 것이 기적의 고도성장이었다. 그런데도 성장의 과실은 사측과 정권의 전유물이었다. 정부지원속에 큰 돈을 모은 재벌그룹은 국가적 지원을 모아 제공한 정권에정치자금으로 보답하여 정경유착의 고리를 강화하였다. 노동자희생에 대한 보답은 고작 저임금고용기회의 확대에 그쳤다. 애초에 노사정이 노측의 희생을 공식적으로 보상하는 의식과절차를 밟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재벌총수의 소유분은 국민이공인하고 불법적 노동투쟁은 설 땅이 없었을 것이다. 보상부담이적지는 않았겠지만 그동안 노사분규 때문에 입은 손실에 비하겠는가. 총수의 소유를 국민이 공인한 만큼 정권의 기부요구도 위축되었으리라. 불행히도 우리의 선택은 달랐고 그 결과 오늘의 위기를 불렀다. 그러나 다시 노사정이 협력해야 한다. 어쩌면 10여년간 미루어온해묵은 숙제를 푸는 모임일 수도 있다. 가슴 아프나 정리해고제는필연이다. 달리 선택이 없다. 노측은 과거의 불신을 청산하는데너그러워야 더 큰 파국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또다시 노측의희생만을 요구하는 처리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번에 정상적 노동시장을 바란다면 재벌그룹도 총수개인과 그가족만을 위하는 체제는 반드시 탈피해야 한다. 선단식 경영과 상호보증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기회를 불공정하게말살해왔다. 상호보증철폐는 이루어져야 한다. 역시 선택의 여지가없다. 무엇보다도 높은 부채비율을 낮추어야 한다. 빚으로 벌인사업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사업이면 지분율감소의 부담을 안고서라도증자하여 추진할 일이다. 반면에 새시대를 선도할 신업종의 사업은계속 개발해 가는 방식으로 선단식체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남의 떡을 빼앗지 않으면서 내 떡을 키우는 체제를 갖출 때 비로소재벌기업은 국민기업으로 사랑받을 것이다. J P 모건이 앞장선 외국채권은행단은 개혁지연을 이유로 턱없는고금리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400억달러 가까운 부채에 금리까지높아진다면 정상화는 요원해진다. 재벌개혁은 사업의 정리이지만정리해고는 대규모의 실직이다. 실직자의 생계와 재취업을 보장하는조치가 없으면 고통을 분담하는 자세가 아니다. 한시가 급하므로하루빨리 합의가 있어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노사정협의회는같이 죽고 같이 사는 자세로 국난극복의 지혜와 각오를 엮어내야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