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차가운 바닷바람이 휘몰아치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후판(두꺼운 철판) 절단공장 외벽에 걸려있는 큼지막한 걸개사진이 사람들의 눈길을 확 사로잡고 있었다. 사진은 선박을 건조하는 도크를 배경으로 4명의 현장근로자가 활짝 웃으며 손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었다. 걸개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지난 9월 ‘제41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휩쓴 삼성중공업의 최고 기능인들. 회사측에서 대회 우승자를 예우하고 현장 근로자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애써 마련한 것이다. 바로 이 한장의 대형 사진에 삼성중공업이 전국대회 3연패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비밀이 담겨있었다. 김병영 연수원장은 “기능인을 제대로 대우하는 기업문화와 올바른 양성시스템, 현장 근로자들의 부단한 노력이 3박자를 이뤄 전국대회에서 3연 연속 우승하게 됐다”며 “이는 기술연수원을 중심으로 현장인력을 양성하는 동시에 사내기능경진대회 등을 개최해 선의의 경쟁을 이끌어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기능인을 대우하는 기업문화가 바로 글로벌 경쟁력’ 이라는 삼성중공업의 경영전략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올해 일궈낸 사상 최대의 수주실적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 수십년간의 피땀어린 노력 덕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77년 기능훈련원을 세운 이후 92년부터 해마다 사내기능경진대회를 열고 있다. 현장 근로자의 기량을 높이고 자연스럽게 경쟁을 이끌자는 의도였다. 조성인 인력개발센터 과장은 “회사는 우승자에 상금과 특진, 해외견학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현장 기능인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도록 배려하고 있다”며 “이 같은 배려에 힘입어 직종별 경쟁률은 40~150대 1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내대회는 전국대회의 지역예선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내 대회 우승자는 곧바로 전국대회 유력후보로 꼽히기 때문이다. 조 과장은 “전국 대회에 출전하려는 지원자가 끊이질 않아 사내 대회 우승자와 자원자가 경합을 벌여 최종 후보자가 결정된다”며 “참가자가 정해지면 곧바로 고강도 프로그램에 따라 훈련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전국대회 참가자는 대회를 3개월 앞두고 전지훈련과 합숙훈련 등 지옥의 과정을 거친다.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야만 국내 최고의 기능인으로 설 수 있기 때문. 훈련은 실제 대회와 똑 같은 조건에서 이뤄진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에어컨 없는 훈련장에서 안전모와 작업복과 작업화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한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화장실에 갈 필요가 없다는 우스개소리까지 전해질 정도다. 올해 금메달을 차지한 김길환씨는 “더위도 힘들었지만 가족과 단절된 환경에서 경쟁자없이 혼자 훈련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면서 “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제공된 환경, 그 자체가 우승의 밑거름”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날 찾아간 연수원에서는 세계최고의 기능인을 꿈꾸는 초보 훈련생들이 한창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각 교육장별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훈련생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실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각 교육장의 공통점은 실습기자재가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는 것. 현장 근로자에게는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기초 훈련때부터 작업도구를 관리해야 한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삼성중공업 기술연수원은 자체 인력과 협력업체 근로자를 매년 1,500명씩 배출하고 있다. 2개월 기초훈련에서부터 전문대학 수준인 사내기능대학, 부산대 조선공학과와의 제휴를 통한 학사ㆍ석사 과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업계에서는 유일하게 특수선 제작에 대한 교육과정도 다루고 있다. LNG선 용접의 경우 한해 교육비만 2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조 과장은 “특수용접 기능인 1명을 키우기 위해 회사가 부담하는 교육비는 750만원에 이른다”며 “회사는 기존 기능인도 매달 한차례씩 테스트를 실시, 기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교육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투자가 오늘의 삼성중공업과 조선강국을 이끌어낸 원동력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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