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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What a Mess)”

독일작가 발두어 부르비츠(Baldur Burwitz) 난지입주작가 성과보고전 <br>남이 그린 그림 걸고 전시장에 범퍼카 씽씽 <br>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날 선 비판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는 우아한 미술 전시장에 대한 선입견은 버리고 출발하자.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관객은 쿵쿵거리는 시끄러운 음악, 차와 벽이 부딪히고 바퀴가 바닥에 쓸리는 ‘소음’을 먼저 맞닥뜨리게 된다. 눈으로 본 전시장은 점입가경이다. 한가운데 쌓인 타이어 더미를 축으로 참여관객을 태운 범퍼카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연신 달리고 또 달리는 중이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을 내 건 개인전에 버젓이 ‘남의 그림’이 걸려 있다.

주인공은 독일작가 발두어 부르비츠(Baldur Burwitz)이다. 독일 태생인 부르비츠는 브라운쉬바이크 미술대학에서 조각과 사진을 전공했으며 함부르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망 작가다. 그는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국제 교류 프로그램의 일환인 ‘국외단기입주작가’로 지난 3월부터 한국에 머물렀으며 그 기간에 경험하고 목격한 한국미술계의 현실을 자기 방식의 개념미술로 표현했다. 시끌벅적한 전시장 광경은 그의 성과 보고전(展)으로 지난달 11일부터 18일까지 난지갤러리 1전시장에서 열렸다.

전시제목마저 ‘엉망진창(What a Mess)’인 그의 개인전 준비 과정은 이랬다. 우선 디즈니랜드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를 크게 출력해 한국의 유명미술가들에게 나눠주고 그 위에 각자의 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용백ㆍ이세현ㆍ문형민ㆍ유승호ㆍ김두진ㆍ김기라ㆍ진기종 등 1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자신의 대표작 경향을 반영해 그림을 완성하는가 하면, 작품내용이 증발(蒸發)되지 않게 캔버스를 묶어버리거나, 애완견에게 먹물로 그림을 그리게 하는 등 나름 성실하게(?) 주문에 응했다. 그리고 작품들은 고스란히 부르비츠의 개인전 전시장에 걸렸다.

한편 시끄럽게 달리는 경주놀이용 카트(cart)는 한국미술을 뜻하는 ‘K-Art(케이-아트ㆍ붙여 읽으면 카트)’와 발음상 유사성을 갖는다. 즉 짜여진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전시장 안을 뱅뱅 맴도는 카트들의 어지러운 레이스를 통해 경쟁적이면서도 틀을 깨지 못한 채 답답하기만 한 한국 현대미술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것이다.



발두어 브루비츠의 이번 전시에 대해 미술평론가 이진명씨는 “작가는 한국의 미술가들이 특정 그림의 스타일을 개발하고 브랜드화(Branding) 해가는 노고의 과정과 전지구촌의 산업화 과정에서 유사성을 발견했다”라며 “한국미술 K-Art에 대한 풍자는 바닥에 남은 스퀴드마크(자동차 바퀴자국)의 어지러움을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르비츠의 예리한 풍자와 급진적인 개념미술은 독일에서도 유명했다. 일례로 그는 예술적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을 초대한 다음 출입구를 폐쇄한 후 사방을 불도저로 압축한 ‘초월의 개념미술’을 저질렀다. 이후 문이 열리자 영문도 모른 채 갇혀 있었던 한 사람이 주먹을 날려 작가는 앞니를 잃기도 했다. 강의 중에는 실기실에 학생들을 모아 문을 폐쇄한 다음 수 만 마리의 파리떼를 풀어놓는 바람에 교수직을 잃은 일화도 있다.

이같은 부르비츠의 기이한 행동에는 공통적으로 문명과 관습에 대한 저항정신이 깔려 있고, 이를 지적하는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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