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으로 유동성 장세를 마무리하고 실적 중심의 펀더멘털 장세로 이동하고 있다. 대외 불확실성 완화 속에 시장은 "수치로 보여줘"를 외치며 실적 확인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 전문가들은 "하반기 들어서도 4·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가 꾸준히 하향되고 있어 실제 추정치를 밑도는 성과가 나올 경우 연초 증시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당장 다음달 초 예정된 삼성전자의 올 4·4분기 잠정실적 발표가 연초 증시의 향배를 가를 것"으로 전망했다. 20일 코스피지수는 7.70포인트(0.39%) 오른 1,983.35포인트로 마감했다.
전날보다 상승폭이 커졌지만 미국의 테이퍼링 발표 직후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 증시의 상승과 비교하면 성에 차지는 않는 규모다. 바깥으로 큰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안으로는 기업실적이라는 또 다른 암초가 남아 있어 국내 증시가 둔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내년 1월 초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시작될 주요 기업들의 올 4·4분기 실적발표 내용이 연초 국내 증시의 분위기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실적 전망치가 존재하는 121곳의 4·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 합은 지난 9월 초 33조원에서 10월 32조원, 11월 31조원으로 떨어지더니 올해를 불과 한 주 남겨둔 이달 19일 현재 30조원대까지 감소했다. 여러 차례 실적 추정치가 하향됐음에도 불구하고 4·4분기는 주요 기업들의 충당금 등 비용처리가 활발한 시기라는 점에서 시장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올 3·4분기 삼성엔지니어링이나 GS 건설처럼 '상상 초월'의 어닝쇼크가 증시 지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종필 현대증권 연구원은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경기회복의 확산 효과는 아직 가시화하지 않고 일부 경기 모멘텀도 개선되지 않아 4·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가 하향기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4·4분기 실적은 계절적 요인(충당금·재고처리 등 반영)으로 추정치보다 덜 나오는 경향이 큰데다 올해에는 경기 부진 속에 추정치마저 계속 내려가고 있어 기업 실적이 내년 초 증시의 변동성을 키우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걱정의 중심에는 대장주 삼성전자도 있다. 삼성전자의 4·4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11월 10조5,000억원에서 최근 10조3,000억원대로 떨어진 가운데 일부 증권사들이 10조원을 밑돌 것이라며 하향 조정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증권이 부품 부문의 부진을 반영해 4·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10조4,000억원에서 9조8,000억원으로 내렸고 한국투자증권도 10조5,000억원에서 9조8,00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임수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이슈 해소만으로 주가가 전고점을 돌파하는 등 탄력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실적 개선 속에 증시 전체의 주당순이익(EPS)을 끌어올려 펀더멘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주 후인 내년 초 삼성전자 프리어닝을 필두로 주요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어느 정도 나와주느냐가 박스권 흐름을 탈피할 열쇠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짧게는 2주, 길게는 1~2달 사이 기업들이 어떤 숫자를 보여주느냐가 연초 증시 분위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4·4분기 실적이 예상치 수준만 되어도 다행이지만 그 아래로 떨어질 경우 증시에 상당한 악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국내 증시에서 갖는 상징성이 큰 만큼 투자심리에 끼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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