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어느새 습관적으로 기업의 움직임이나 경영결정을 ‘비경제적 필요’ 때문에 이뤄지고 있다고 바라본다. 삼성전자는 최근 ‘제2의 반도체 신화’ 창조를 위해 오는 2012년까지 무려 34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즉각 “최근 삼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자 이를 환기시키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것이 바로 ‘반기업 정서’의 한복판에 선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결단에 박수를 치지는 못할 망정 뭔가 ‘노림수’가 있는 것처럼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볼 정도로 ‘분열과 갈등’이 만연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 눈치, NGO 눈치에 기업이 숨죽인다=우리 사회의 ‘반기업 정서’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 최근 여론의 도마에 오른 D사의 CEO는 “해명을 하고 싶어도 해명에 대한 또 하나의 왜곡된 해석이 곧바로 쏟아져 나온다”며 “기업이 어떤 활동을 하든, 어떤 결정을 내리든 여론의 뭇매에서 피할 방법은 없다”고 자조했다. 그는 이어 매순간 차라리 기업경영을 포기하자는 생각이 들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는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독배를 드는 심경’으로 버티고 있다고 실토했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아무리 화려한 색도 검거나 붉어 보이기 마련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최근 미국과 일본ㆍ유럽의 유력 언론들이 ‘한국기업의 경쟁력’을 연달아 특집으로 다루면서 자국 기업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기업들은 이런 ‘낭보’를 전하는 것조차 ‘오만함’으로 비쳐질까 두려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기업하기 나쁜 나라’는 곧바로 국가 전체의 성장동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기업에 대한 사회 전반의 애정과 존경이 없이는 국가경제의 앞날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 기죽이기 도 넘었다=일부 시민단체의 무차별적인 공세와 여론을 핑계로 삼은 정치권의 가세로 ‘기업 기죽이기’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는 모습이다. 특히 몇몇 시민단체는 ‘기업에 대한 공격’이 마치 존재의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연일 기업들을 여론의 심판대 위에 올려놓고 있다. 정치권 역시 이에 편승해 마구잡이로 ‘기업 때리기’에 가세하고 있다. ‘국정감사가 아닌 민간기업 감사’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는 최근의 국정감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회의원들은 국정 전반에 걸친 정부의 실책보다는 ‘기업 꼬투리 잡기’에 여념이 없다. 대외신인도가 떨어지든 말든 대기업 총수들을 마녀재판식으로 증언대에 세우는 것은 물론 이들을 대상으로 아무 거리낌 없이 막말을 일삼고 있다. 삼성의 사례에서 보듯 ‘사회적 공론’이란 이름의 여론은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권이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자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임원은 “경제가 어려워진 책임을 정치권이 아닌 ‘기업의 부도덕성’에 떠넘기기 위한 전략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라며 “글로벌 기업전쟁이 갈수록 격화되는 상황에서 유독 우리나라만 ‘기업 뒷다리 잡기’에 나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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