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사례에서 보듯 국내 기업들의 M&A는 끊이지 않고 이뤄지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국내 30대그룹은 29조1,900억원을 투자해 203곳의 기업을 M&A했다. 건수로는 CJ가 가장 많았지만 금액으로는 현대자동차가 5조1,990억원으로 컸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이 있더라도 새롭게 대규모로 설비투자에 나서거나 신규 사업을 벌이기에는 불확실성이 너무 큰 탓이다. 대신 이미 검증된 기업들을 인수해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확보함으로써 성장성을 키우는 것이 훨씬 낫다는 얘기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12일 "삼성과 한화의 빅딜처럼 사업구조를 바꿔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크고 작은 M&A를 계속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내부 유보자금이 풍부하고 저금리로 조달이 편리하기 때문에 자금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들어서는 대형 M&A가 성사되고 있다.
지난해 사모펀드(PEF)인 한앤컴퍼니는 한국타이어와 세계 2위 자동차용 에어컨 제조기업 한라비스테온공조를 3조9,000억원에 인수했다. 대규모 거래(딜)였지만 저금리에 차입이 원활한 것도 한몫했다. 롯데그룹도 KT렌탈을 품에 안았다. 앞으로도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씨앤앰(C&M) 같은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통 분야도 M&A가 많았는데 닭고기 유통업체인 하림그룹은 지난 2월 투자파트너사 JKL과 팬오션을 인수했다. 인수대금만 1조79억원짜리였다. 지난달에는 호텔신라가 기내 면세점 미국업체인 디패스(DFASS) 지분 44%를 1억500만달러(1,176억원)에 확보했고 패션그룹 형지도 지난달 잡화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이에프씨(옛 에스콰이아)를 670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M&A는 글로벌 경쟁업체에 비해서는 규모가 작고 대상도 국내 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M&A의 특성상 금액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지만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인텔의 글로벌 M&A 금액은 최소 8조원으로 삼성전자의 9~10배에 달한다는 게 투자은행(IB) 업계의 추정이다.
현대차만 해도 최근 수년간 해외 M&A가 없었다. 현대차가 국내 기업 가운데 최근 수년간 M&A 실적이 가장 큰 것도 따지고 보면 현대건설을 5조원에 가까운 돈을 주고 가져온 게 가장 큰 요인이다.
특히 국내 기업의 해외 M&A 실적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크게 뒤처진다.
올해 1ㆍ4분기 일본 기업의 해외 M&A 금액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2013년 기준 국내 기업의 해외 M&A 총액은 414억달러로 중국(1,641억달러)과 비교하면 4분의1 수준이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애플이나 인텔 같은 주요 해외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보면 국내 대기업의 해외 M&A 규모나 건수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며 "특히 중국이나 일본 기업들과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의 M&A 여력은 충분하다. 삼성과 현대차를 포함한 국내 10대그룹 상장 계열사의 사내유보금은 약 503조원에 달한다. 삼성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0조원 수준이고 현대차도 100조원을 넘는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글로벌 업체들이 저금리 바람을 타고 경쟁적으로 M&A에 나서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들도 풍부한 자금력을 이용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M&A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삼성의 경우 비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확실한 한방'이라 할 수 있는 대형 M&A가 해외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꾸준하고 삼성화재 등 금융 계열사에서도 물밑에서는 상당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금융지주회사들도 동남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현지 금융사에 대한 M&A 작업을 차곡차곡 진행하고 있다. M&A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음만 먹으면 기업들이 돈을 구할 길은 얼마든 있다"며 "금리가 워낙 낮고 마땅히 보유 현금을 굴릴 곳도 없는데다 글로벌 시장에 제법 괜찮은 물건들이 나오는 터라 M&A 작업이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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