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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정형화’ 거부한 건반 위 마술사

■ 글렌 굴드:피아니즘의 황홀경 (피터 F 오스왈드 지음, 을유문화사 펴냄)<br>완벽한 기교 바탕 ‘자신만의 색깔’ 창조<br>‘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세계가 감탄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바하는 광막한 벌판에 우뚝 솟은 태산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거대한 봉우리를 오르면서 감탄하고 경외하고 좌절해야 했던가. 그러나 20세기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의 등장으로, 적어도 바하에 관한한 엄청난 변화가 일었다. 1955년에 내놓았던 데뷔 앨범.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 한장으로 그는 전 세계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파격. 당시 그의 음반을 들은 비평가들과 대중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도대체 바하를 이렇게 연주할 수도 있단 말인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러시아 대사 카이저링크 백작의 궁정 음악가였던 골드베르크가 불면증에 시달리던 백작을 위해 바하에게 작곡을 부탁했던 일종의 자장가였다. 2개의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이 곡은 총 연주시간이 40여분 정도의 대곡이다. 각각의 변주는 연주시간이 짧게는 1분, 길게는 4분여 정도까지 늘어진다. 하지만 글렌 굴드는 악보 위에 쓰여진 바하의 시간은 안중에도 없었다. 완벽한 기교를 바탕으로 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흐름을 완전히 자신 만의 세계 속에 집어넣었다. 페달은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고 템포는 자유자재로 변형시켰다. 흔히들 1분 남짓 연주하는 4번째 변주곡 시간은 그 절반으로 줄였다. 엄청나게 빠른 연주 속도 속에서도 음색은 한음 한음 투명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마디 마디 악구의 흐름은 유려했다. 굴드는 바하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며 그 정상에 서는데 그치지 않고, 아예 이 거대한 산봉우리를 해체하고 그것을 삼태기에 담아 자신만의 정원 안에 옮겨 놓았던 것이다. 천재적인 연주가들에게 언제나 그렇듯이 찬사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파격적인 해석에 일부 비평가들은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 나갔다. 글렌 굴드가 열 아홉살 때 일이다. 작곡가 오스카 모라베츠는 자신의 D단조 환상곡을 들고 글렌 굴드를 찾아간다. 캐나다에서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쌓아나가던 글렌 굴드는 악보를 받아 든 뒤 두주 후 작곡가 앞에서 그 곡을 들려준다. 연주를 들은 작곡가 모라베츠. 기가 막혔다. 굴드가 연주한 곡의 빠르기는 자신이 의도했던 것과는 딴판이었고 페달은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다. 멜로디만 도드라지게 연주하고 그 외 모든 음은 배경처럼 깔리도록 하기위해 페달을 사용해야 하는 부분에서 글렌 굴드는 딱 그 반대로 했다. “오스카. 나는 당신이 바라는 대로 연주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이미 결정했어요. 한 소리가 다른 소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내게 말씀하신다면, 그건 잘못이예요. 모든 소리가 다 똑같이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그 밖에 당신이 말씀하시는 방식을 보면 당신 작품을 스스로도 잘 모르시는 것처럼 보여요.” 23살에 내놓았던 골드베르크 앨범 이후 미국, 러시아 등 전 세계를 누비며 화려한 연주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는 32살에 돌연 공개 연주를 중단하고 오로지 스튜디오 녹음에만 전념한다. 평생을 우울증과 기괴한 행동으로 언론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1982년 50살이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요절한 굴드는 워낙 신화적인 인물이라 그를 다룬 책들도 굉장히 많다. 캐나다 음악학자인 조프리 페이전트가 쓴 ‘글렌 굴드의 음악과 정신’, 기자였던 오토 프리드리히의 ‘글렌 굴드의 생애와 변주’, 그리고 이색적인 전기 작품인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가 있다. 을유문화사가 내놓은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 가운데 7번째인 ‘글렌 굴드: 피아니즘의 황홀경’은 글렌 굴드와 20여년을 친구로 지낸 심리학자겸 의사 피터 F. 오스왈드가 쓴 책이다. 슈나이더의 글에 쇼팽 ‘녹턴’의 낭만이 느껴진다면 오스왈드의 책은 바하 ‘평균율 클라비어’의 장중함이 묻어나온다. 글렌 굴드를 몰라도 살아가는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그를 알면 세상은 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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