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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박완서 창작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한 작가가 늙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쑥스럽고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그저 한 인간이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되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박완서씨(67)의 경우 글쟁이이니까 아무래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난 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지가 벌써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작가는 최근 출간한 창작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의 서문에 이런 말을 썼다. 『여기 수록된 단편들은 젊은이들 보기엔 무슨 맛으로 살까 싶은 늙은이들 얘기가 대부분이다. 늙은이 너무 불쌍해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물론 내가 맛있다고 말할수 있는게 단맛만은 아니다. 쓰고 불편한 것의 맛을 아는게 연륜이고, 나는 감추려야 감출 길 없는 내 연륜을 당당하게 여기고 싶다』 「마른 꽃」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금 조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와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데 지나지 않았나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가 나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 회갑을 앞둔 초로의 과부가 멋쟁이 홀아비 조박사와 만나 연애하고 이를 눈치챈 딸이 처음에는 엄마의 연애를 비난하다가 조박사와 재혼하라고 성화하는 내용의 단편이다. 절로 웃음을 자아나게 하는 소설 「마른 꽃」은 그러나 노년의 쓸쓸함이 배여있다. 「아이구. 내복을 갈아입을때마다 드러날 기름기 없이 처진 속살과 거기서 우수수 떨굴 비듬」그런 것들을 같이하려고 재혼한단 말인가라는 회의이다. 또 한편의 소설 「환각의 나비」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찾는 딸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우리 시대 노인에게 평화와 안식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표제작이 된 「너무도 쓸쓸한 당신」 역시 그렇다. 한 초로의 부인이 아들의 졸업식장에서 안사돈에게 은근한 모욕을 당하고 난 뒤 평소에 체제에순응하는 멋없고 비굴한 인간이라고 경멸하는 남편, 그것도 오랫동안 떨어져 산 남편을 점점 관용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콩트를 포함해 모두 10편의 작품이 실린 이 창작집은 그러니까 인간 만사에 통달한 한 노년의 작가가 읊어낸 우리시대 노인들의 풍속도인 셈이다. 창작과 비평사 펴냄. 7,500원. 【이용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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