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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 권위의 골프 대회로 잘 알려진 일본오픈. 미국의 US오픈, 한국의 한국오픈처럼 그 나라의 골프 문화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내셔널 타이틀 대회다. 올해 76회째인 일본오픈은 지난 13~16일 지바의 다카노다이CC(파71ㆍ7,061야드)에서 열렸다. 내셔널 타이틀 대회답게 일본오픈 마지막 날 약 1만5,000명을 비롯해 나흘간 총 3만5,000명이 넘는 갤러리가 대회장을 찾았다. 도호쿠(東北) 대지진으로 인한 국민 불안감 탓에 흥행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평균 3만명 수준이던 예년 대회보다 오히려 갤러리가 늘었다. 대회장 한편에 놓인 지진 피해자 돕기 모금함은 갤러리 숫자만큼 수북이 채워졌다. 갤러리의 인산인해 속에서도 대회장은 공원처럼 조용했다. 휴대폰 벨소리는 한번도 들리지 않았고 심지어 일행끼리 얘기를 나누는 경우도 드물었다. 시끄러운 곳은 도시락 판매 부스와 중계용 대형 TV, 일본오픈 공식 상품 판매점이 마련된 ‘갤러리 플라자’뿐. 일본오픈에는 갤러리 소음을 비롯해 세 가지가 없었다. 대회 주최측과 갤러리가 함께 만드는 ‘3무(無)’가 일본오픈에 전통과 권위를 부여하고 있었다. 일본골프협회(JGA)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나가호리 마사미 씨는 “3ㆍ4년 전까지 갤러리의 카메라 셔터나 휴대폰 벨소리 탓에 문제가 많았다. 휴대폰을 맡기고 대회장에 들어가게 하는 방법도 거론됐으나 시행하지는 않았다”면서 “대신 대회장 곳곳에 안내문을 붙였고 특히 선수들이 출연해 자제를 요청한 동영상이 홈페이지에서 호응을 얻었다. 좋은 플레이를 보는 게 목적인 만큼 공감대를 얻어 조용한 갤러리 문화가 정착됐다”고 말했다. 일본오픈에는 타이틀 스폰서도 없고 초청 선수도 없다. JGA의 공식 후원사인 NEC를 비롯, 니혼게이자이 신문, 에미레이트 항공 등 10여개의 후원사가 있지만 대회 타이틀에는 기업명을 쓰지 않는다. 또 모든 시설물을 짙은 녹색과 흰색으로만 구성하기 때문에 후원사들의 로고도 일본오픈 대회장 내에서는 고유의 색깔을 버릴 수밖에 없다. 아마추어를 제외하면 초청 선수 없이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뛰는 선수로만 출전 명단을 짜는 것 또한 내셔널 타이틀 대회의 자존심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오픈의 경우는 코오롱이 1990년부터 타이틀 스폰서를 맡으면서 닉 팔도(잉글랜드),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존 댈리(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 유명 선수들을 차례로 초청해 매년 구름 갤러리를 끌어모았다. 하지만 이달 초 천안 우정힐스CC에서 끝난 제54회 대회에서는 선수 이동 전에 갤러리가 우르르 필드를 가로지르는가 하면 인터넷 방송 중계팀이 양용은 선수의 공을 밟고 지나가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일본의 성숙한 관전 문화가 부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편 배상문(25ㆍ우리투자증권)이 76회 일본오픈을 우승하면서 1941년 14회 대회 연덕춘, 1972년 37회 대회 한장상, 지난해 75회 대회 김경태에 이어 일본오픈의 네 번째 한국인 챔피언이 됐다. 배상문의 이름 석자는 우승컵에 새겨져 일본 골프 역사에 길이 남게 된다. 현재의 은제 우승컵은 1952년부터 쓰여졌는데 종전에는 다른 형태의 우승컵이 쓰이다가 연덕춘이 1941년 한국으로 가져간 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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