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28부(최창영 부장판사)는 27일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1951년 2월 사형당한 최 씨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피고에 대한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다른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며 “피고인에 대한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최 씨는 도산 안창호나 백범 김구 등과 교류하며 함께 독립운동을 펼치고 독립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서 치안부장 등으로 일했던 인물로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그의 장남이다. 최 씨는 생전 친일파 척결을 주장한 데다 1948년 제헌의회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갑구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 맞서 출마하면서 이 전 대통령의 정적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다 그해 쿠데타를 일으키려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고 수감 중 한국전쟁이 발발 해 인민군에 의해 풀려났다. 풀려난 이후에는 피란길에 오르는 대신 서울에서 정전·평화 운동을 벌였다. 다만 이같은 그의 활동은 이승만 정권 당시 친북 활동으로 몰려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받아 총살을 당했다.
재판부는 “당시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의 여러가지 진술이 혐의를 인정하는 취지라고 보기 어렵고, 또 고의로 적을 은닉·보호하거나 적과 통신을 하려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전쟁당시 김일성에게 전쟁을 즉시 중지하고 남과 북의 대표를 해외로 보내 토론을 하자는 제안은 민족 통일을 위한 활동”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최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후 이례적으로 별도의 소회를 밝혔다. 재판장은 “우리 사법 체계가 미처 정착 성숙하지 못한 혼란기 6·25 군사법원에서 허망하게 생명을 빼앗긴 데 대해 재판부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며 “공적으로 선언하는 이 판결이 고인의 인격적 불명예를 복원하고 불행한 과거사를 바로잡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평생 상처를 안은 유가족에게도 위안을 찾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전했다.
최 씨는 물론 최 씨의 유가족도 이미 대부분 숨진 만큼 이날 선고 자리에는 최 씨의 삼남 최말립 대한체육회 원로고문만이 자리를 지켰다. 최말립 고문은 “통한의 65년이었다”며 “가족들이 그동안 많은 상처가 있었고 형(최필립)도 마지막 순간에 선친의 재심을 위해 힘 써달라고 당부했는데 이같은 결과가 나와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회를 전했다.
최 씨에 대한 재심은 2009년 진실위가 법원에 재심을 권고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최말립 고문은 2006년 부친의 죽음이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요청했다. 진실위는 2009년 9월 최씨가 이승만 정권에 맞선 뒤 헌법에 설치 근거도 없고 법관 자격도 없으며 재판권도 없는 군법회의에서 사실관계가 오인된 판결로 부당하게 총살당했다고 결론짓고 재심 수용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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