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와 물가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이 끝났다. 수개월째 치우친 물가안정 스탠스에서 경기진작 쪽으로 방점을 찍으며 금리인하를 강하게 시사한 것. 물가는 하반기 안정되겠지만 경기둔화는 더 이상 미루기 힘들 정도로 나빠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이르면 오는 5월, 늦어도 6월에 단행할 것으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단 국제유가가 11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최고치로 치솟은 점은 끝까지 지켜볼 변수다. ◇한은 경기에 방점 찍다=한은이 마침내 금리인하 시그널을 던졌다. 통화정책 스탠스를 물가에서 경기로 옮긴 것. 경기둔화 경계감도 예상보다 수위가 높았다. 이날 한은은 금통위 자료를 통해 처음으로 ‘경기둔화 가능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기둔화’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터라 무게감은 배가 됐다. 또 경기 상승세가 주춤하다며 지난 3월의 상승기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입장에서도 후퇴했다. 투자설비와 소비 모두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대외여건 부진으로 향후 경기흐름 불확실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 발언은 한발 더 나아갔다. “경제성장은 몇달 전보다 상당폭 둔화되고 국제금융불안이 우리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걱정의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당초 4.7%에서 4% 초반대로 하락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특히 투자가 부진하고 소비증가율이 떨어지는 등 전체적으로 내수 위축 조짐을 강한 톤으로 경계했다. 결국 한은은 경기둔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 내수회복을 위해 경기부양 카드를 쓸 정부와 정책 공조에 나서겠다는 뜻을 확실하게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의 사실상 ‘경기부양’ 발언에 화답한 셈이다. ◇물가 경계심리는 완화=반면 물가 경계감은 전달보다 확실하게 톤 다운됐다. 우선 지난달 수차례나 언급했던 ‘기대 인플레이션’ 발언이 이날 간담회에서는 단 한번도 없었다. 지난달 기대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가능성 발언 등으로 물가안정을 강하게 내비쳤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만큼 물가에 대한 걱정이 예상외로 완화됐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물가안정 기대감도 내비쳤다. 이 총재는 “물가가 당분간 꽤 높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연말께 소비자물가가 상승률이 떨어지면서 목표범위(2.5~3.5%)에 들어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고물가가 우려는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향안정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 섞인’ 얘기다. 이 총재는 특히 고물가의 주원인인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글로벌 경기둔화로 계속 상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물가안정세에 힘을 보탰다. ◇금리인하 5월 또는 6월(?)=이 같은 이 총재의 입장 변화에 채권시장은 한은의 금리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윤여삼 대우증권 연구원은 “이 총재의 발언은 인플레이션보다 경기 다운사이징에 주목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줬다”며 “이는 한은이 금리를 인하하겠다고 시사한 바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이날 금리는 일제히 급락하며 초강세를 연출했다. 한은 내부에서도 이 총재의 발언을 금리인하로 해석하는 모습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통화정책은 물가와 경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길게 보고 하는 정책이라는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당장의 고물가보다 앞으로의 경기하강 및 물가안정에 포커스를 두고 금리정책을 펴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금리인하 시기에 대해서는 2ㆍ4분기 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르면 5월에도 가능해 보이지만 통상 신임 금통위원들이 시스템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6월이 적기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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