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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사무실...그 속에 사는 게 공포


영화 '오피스'는 피가 튀고 살이 터지는 핏빛 스릴러다. 하지만 망치로 머리를 내리치거나 칼로 다른 이를 수십 번 찌르는 장면들이 이 영화의 가장 참혹한 풍경은 아니다. 진짜 공포는 조용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던 한낮의 사무실에서, 실적이 떨어졌다며 인신공격을 퍼붓는 상사와 겉으론 챙겨주는 듯 뒤로는 온갖 구설을 실어나르는 동료들의 옆모습에서 진득하게 배어 난다. 한국의 많은 직장인들이 농담처럼 '살아가는 게 공포'라는 말을 하곤 한다. 영화의 수확은 그 농담이 그저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준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식품회사 영업팀 과장 김병국(배성우 분)이 퇴근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듯 하지만 어딘가 넋이 나간 얼굴. 평소처럼 저녁 식사를 한 김 과장은 함께 사는 노모와 아내, 아픈 어린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어떤 결심을 한 듯 자리를 뜬다. 돌아온 그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고, 기계처럼 가족을 참살한 그는 자취를 감춘다.

사건 수사에 착수한 최종훈(박성웅 분) 형사는 김 과장의 회사 팀원들을 만나 어떤 징후는 없었는지를 묻는다. 부장부터 말단 사원까지 입을 모아 '지각 한 번 안 하고 일밖에 모르는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그럴싸한 답변만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들이 대화를 거듭할수록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눈치 없이 열심히 일만 하는 건 삽질이나 다름없다', '그건 무던한 게 아니라 무능한 것'이라는 평가는 오피스라는 이 폐쇄적 공간에서 김 과장이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짐작하게끔 해 준다.

그러던 중 김 과장이 사건 후 회사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찍힌 후 나가는 모습은 찍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수사를 통해 밝혀진다. 죄책감일까, 보복의 두려움일까. 김 과장의 동료들은 회사에 남은 김 과장의 그림자를 떠올리며 불안에 떤다. 특히 조직의 가장 바닥에 위치한 인턴 이미례(고아성 분)는 김 과장이 사라진 후 줄곧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장르적으로 스릴러와 호러를 오가는 듯한 이 영화의 장점은 비좁은 사무실에서 펼쳐지는 인간관계에 대한 치밀한 묘사다. 분명 어느 사무실에는 한 명쯤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 서로 부딪치며 일어나는 심리적 긴장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이어진다. 제 몫을 다하는 배우들 덕에 극 중 인물 모두가 뚜렷한 존재감과 현실감도 획득했다.

다만 이야기 전개에 허점이 너무 많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다. 예컨대 아무리 범인이 이상심리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했다지만 큰 덩치의 젊은 남성을 하나 다치지 않고 공격해 살해한 후 자살처럼 꾸민다는 식의 묘사는 지나치게 개연성이 떨어진다. '저게 가능하냐'는 의문이 여러 번 생기면 영화의 모든 장점들이 퇴색하기 마련이다. 27일 개봉. 사진제공=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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