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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특집/지구촌현장 가다] 5. 다시보는 한국식 경영
입력2002-06-05 00:00:00
수정
2002.06.05 00:00:00
"스피드한국 배우자" 벤치마킹 모델로베를린 동쪽을 가로지르는 슈프레 강변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오버쉔네바이데산업단지가 나타난다. 강 맞은편에는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고풍스런 대형건물들을 중심으로 그림같은 아담한 주택단지가 펼쳐져 있다.
지금이야 별다른 눈길을 끌지 못하지만 구동독시절 사회주의 방식에 따라 조성된 대표적인 공업단지다. 이곳에는 지난 88년 통독이후 부실화된 기업 3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주의체제에 안주하던 국영기업들이 모두 통독후 파산에 직면, 결국 서방기업에 인수됐었다. 현재는 3곳 가운데 한 곳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가동중단 상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곳이 바로 삼성SDI 베를린공장.
삼성SDI가 지난 92년 쓰러져가는 브라운관 공장 WF를 단돈 1마르크에 사서 10년 남짓만에 반듯한 흑자기업으로 탈바꿈시킨 현장이다. 인근에 붙어있는 트랜스포머 생산기업 '아이에게'와 산업용 케이블업체 'KWO'는 주인이 바뀐 후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재차 주저앉았다.
영국과 서독기업이 덤벼들었다가 두손 두발을 모두 들어버린 바로 그 현장에서 삼성SDI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일등주의와 일벌레.
한마디로 한국식 경영이었다.
삼성SDI 베를린공장은 인수후 3년간 주력제품이지만 저부가가치제품인 소형브라운관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기업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비효율성, 과잉인력 역시 골칫거리였다.
"지난 10년은 사회주의 기업문화에 길들여졌던 곳에 삼성식 경영을 뿌리내린 과정이다.
독일인들은 이 기간동안 우리를 워커홀릭(일중독자)이라고 불렀다." (박태식 삼성SDI 베를린 생산법인장)
10년에 걸친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일등주의 경영으로 이곳은 현재 TV브라운관 유럽생산기지로 우뚝 섰다. 판매량은 9년간 6.6배 늘어났고 지난해말로 투자금액 2억유로 전액을 회수했다.
지난해 매출액과 당기순익은 각각 2억8,300만유로(약 3,250억원)와 2,950만유로(약 340억원). 박 전무는 "지난해 순익률은 10.3%이며 올해는 14.2%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독일인 근로자의 인건비가 다른 삼성 해외공장에 비해 높지만 원가절감과 고부가가치전략으로 수익성이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사회주의국가였던 폴란드의 무하바.
현지어로는 '안개의 도시'란 뜻인 이곳은 인구 2만명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그곳에는 LG전자 TV공장이 취재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슬비가 슬금슬금 내리는 시골길을 따라 들어선 공장에선 푸른 눈의 폴란드 근로자들이 취재팀을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630명이 일하는 이 TV공장은 LG전자의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매출순위 10위, 수익성순위 30위 안에 드는 유럽생산기지. LG전자 역시 회생불능 판정을 받은 국영기업을 99년 부채를 떠안는 조건으로 매입해 인수 첫해부터 흑자로 돌려 세웠다.
최영규 법인장은 "사회주의 기업의 비효율성을 걷어낸데다 본사의 풍부한 판매망이 흑자전환을 도왔다"며 "100% LG브랜드로만 팔고 핵심부품의 구매경쟁력이 커진 점도 주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지구촌에서 한국식 경영이 잇달아 성공하는 데는 사실 남다른 교육열과 인재를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이 크게 기여했다.
유럽에서 만난 필립스, 르노, 에어 프랑스 등 세계적 기업의 임직원들은 한결같이 "한국의 우수한 인력풀이 놀랍기만 하다"는 반응이었다.
LG필립스디스플레이의 크리스토프 클라우스 아헨공장장은 "한국의 LG는? 교육을 잘 받은 우수한 인력들이 회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우수한 집단"이라며 "빠른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업무를 추진하는 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에어프랑스의 패트릭 알렉산더 부회장 역시 "대한항공의 승무원과 직원들과의 상호 교차 프로그램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등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며 "대한한공의 우수한 인력들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점을 배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때 부실공사의 주범으로 폄하됐던 강력한 추진력은 한국식 경영의 또 다른 요체로 인정받고 있었다. LG전자 타우바테공장(브라질)의 김수철 부장은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인 관리자들은 처음에 여유 만만한 브라질 현지 직원들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며 "하지만 일을 계획대로 진행하는 점을 브라질인들도 좋아한다"고 전했다.
취재팀이 6개 대륙을 돌면서 확인한 한국식 경영은 분명 승리하고 있었다. 특히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과 LG의 경영방식은 어느새 현지기업들의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었다.
<특별취재팀>
김형기팀장
이규진기자
홍병문기자
전용호기자
최원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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