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의 수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백52를 게을리할 수가 없는 형편인데 53으로 우악스럽게 끊을 때 백54로 굴복해야 하는 것이 또 쓰라리다. 백56은 당장 축이니 또 어쩔 수 없고 57로 따낼 때 58로 웅크려야 하는 것도 뼈가 저리다. 거기까지만 활용해 놓고 유유히 59로 귀를 살리는 창하오. “왜 상변을 선수로 틀어막지 않았을까요?” 해설실의 시인 박해진이 루이9단에게 묻는 말이다. 가에 두지 않은 이유를 물은 것. “절호의 팻감인데 괜히 두어 버릴 이유가 없지요.” 루이의 대답이다. 최철한이 60으로 한번 따내 봤지만 61의 팻감을 안 받을 재간이 없다. 64로 끊기고 나서야 비로소 창하오는 60의 자리를 이어주었다. 백66, 68은 일단 뒷맛을 엿보겠다는 수순. 백66으로 참고도의 백1에 모는 것은 책략 부족이다. 흑2, 4로 씌우면 우변의 흑진이 이상적으로 부풀어 백이 견디기 어렵다. 백70으로 탈출을 도모했을 때 71이 멋진 공격수. “살 수는 있을까.” “살고 바둑은 지겠지.” 검토실에서 송아지 삼총사인 박영훈과 원성진이 주고 받은 말이다. 송아지 삼총사의 다른 한 사람은 오늘의 대국자 최철한이다. 살기만 하면야 백도 좌상귀 방면에 큰 실리를 장만해 놓은 입장이니 승부는 될 터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사는 수가 얼른 보이지 않는다.(63…60의 아래. 65…60)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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