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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공주의 한 국도 변에서 하루 평균 100여대 차량을 대상으로 주유업을 하고 있는 정갑득(67·가명)씨는 최근 고민이 많다. 아내와 단둘이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80만여원. 하루도 쉬지 않고 운영하기에는 이제 체력이 달린다는 게 정씨의 하소연이다.
한때 '3대가 놀고먹어도 된다'는 주유소의 체면이 요즘 말이 아니다. 주유소 난립으로 황금알을 낳은 거위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제유가마저 하락하면서 마진 감소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적자를 견디다 못해 하루에 한 개꼴로 폐업한다. 국도 변 요충지에 자리 잡더라도 우회도로가 신설되거나 도로가 확장이 되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쪽박 신세다. 그런데도 가격을 더 내리라는 정부의 압박에 할 말을 잃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유소 사장은 "기름값에 포함돼 있는 세금은 그대로 두고 유통 마진을 줄이라는 것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라며 발끈했다.
물론 좋은 자리를 깔고 앉아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놀고먹어도' 떼돈 버는 대박 주유소가 존재하기는 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무풍지대에 있는 알짜 주유소는 10곳 가운데 1~2곳 정도라는 게 주유소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주유소협회의 실태조사는 시사점을 던진다. 지난해 2,69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주유소의 86%인 2,316곳이 한 달 30일 이상 운영해 연평균 37억4,1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매출 원가와 각종 세금, 시설 유지·보수, 카드수수료와 같은 금융 비용 등을 제외한 순수 영업이익은 고작 1.1% 수준인 3,800만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무보수의 가족 1~2명이 함께 했을 때 이만한 벌이가 가능하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직원들의 처우도 열악하기 그지없다. 정규직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알바'에 의존한다. 주유소 종업원의 평균 재직 기간은 10개월 정도. 6개월 미만 근무한다는 비율도 25.6%에 이른다. 타 직종에 비해 현저히 근무기간이 짧다. 대도시 알바는 시급 6,000원 정도 받고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지방은 인건비가 덜 더는 노인들을 선호하고 있다. 노인의 시급은 올해 최저임금(5,580원)보다 적은 4,000~5,000원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유소가 사양업종으로 추락한 1차적 원인은 과잉공급. 지난 1995년 주유소 거리 제한이 철폐된 후 전국 각지에서 주유소가 난립하기 시작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에 너도나도 주유소 시장에 뛰어든 결과다. 1995년 4,949곳에 불과하던 주유소는 2005년에 1만1,123곳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1만2,575곳으로 늘었다. 불과 50m마다 다닥다닥 붙어 호객행위까지 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연유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 대수와 최근 수요 감소를 반영해 7,500곳 안팎이 적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차량을 위시한 고연비 자동차의 등장도 주유소로서는 반갑지 않다. 1995년 주유소의 월평균 판매량은 35만2,000ℓ. 하지만 매년 판매량이 줄더니 지난해에는 20만8,000ℓ까지 뚝 떨어졌다. 주유소와 대중교통 이용 증가 속도를 감안해도 자동차 연비개선은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휴·폐업 주유소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2009년 107곳이던 폐업 주유소는 2012년 219곳으로 늘었고 2013년 310곳까지 증가했다. 폐업할 돈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토지정화비용 등을 합쳐 폐업 비용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3억원에 이르러 폐업도 기름집 사장 맘대로 못한다. 국도 변에 흉물로 방치된 주유소가 간혹 보이는 이유다. 주유소협회는 현재 전국적으로 약 600여개 주유소가 폐업을 못 한 채 방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문영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실장은 "업황 침체로 적자를 보는 정유 업계는 물론 정부도 공제조합에 출자해 주유소의 폐업을 유도할 여지가 없다"며 "이제는 주유업의 재편을 위해 정부와 업계가 머리를 맞대야 할 시기"라고 지적했다. , 세종=구경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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