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기부의 나라다. 며칠 전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꺼낸 것은 담임선생님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장만하기 위해 20달러씩 모금한다는 학부모 모임의 기부금 안내문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교육예산이 줄어들면서 미국 학교에서 기부를 요청하는 빈도는 더욱 잦아지고 있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기증할 캔 통조림부터 도서관 도서 구입, 학교 시설 교체, 난치병 어린이 돕기에 이르기까지 기부의 명목도 다양하다. 이방인의 눈에는 이런 것까지 기부를 요청하나 싶을 정도로 생경한 것도 있지만 거의 모든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이를 당연한 듯 받아들인다. 미국의 개인, 기업 등의 자선기부금 규모는 한 해 3,000억달러에 달한다. 한국의 올해 총수출액 5,500억달러의 절반을 웃도는 규모다. 미국 기부문화의 뿌리는 기업인들이다. 19세기와 20세기의 산업화를 거치면서 엄청난 부를 취득한 기업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하면서 이런 전통을 만들었다. 미국의 3대 사회공헌 재단인 카네기재단ㆍ록펠러재단ㆍ포드재단은 모두 기업인들이 세운 것이다. 세월을 뛰어넘어 실리콘밸리와 월스트리트에서 부를 일군 현대 기업인들 사이에서도 기부와 자선의 문화는 이어져오고 있다.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정부의 고유 업무로 취급되던 부문까지 자선활동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선사업가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이미 130억달러 이상을 세계 각국의 공중보건 사업에 쏟아붓고 있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는 자신들의 기업재단과 고객의 기부금으로 실업자들을 위한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소자본 창업자를 위한 대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뉴저지주 뉴어크의 교육 개선을 위해 1억달러를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는 오프소사이어티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가 가속화되면서 '월가 점령시위'에서 단적으로 표출된 것처럼 기업과 기업인들의 탐욕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많은 기업들 역시 해당 기업과 경영자들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쌓아 올린 부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대신 사회에 환원하는 전통이 살아 있는 한 정당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존경을 받는 문화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미국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커다란 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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