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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 혁명] 1-2. 휴대폰ㆍ카드만 챙기면 `휴가준비 끝“

2003년8월의 어느 날. 출근한다면 이렇게 일찍 일어났을 리가 없다. 김혜수(27)씨는 아침부터 흥얼거리며 부산을 떨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엔 할 일이 아주 많다. 다 마쳐야 오후에 휴가를 맘 놓고 떠날 수 있을 터이다. 가장 먼저 치과에 들려서 얼마 전 사랑니 뽑은 자리를 검사받기로 했다.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치과에 도착했지만 방학 기간이라 학생 몇 명이 기다리고 있다. 혜수씨는 대기실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콘도 예약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2동 509호 3박, 김혜수씨, 예약완료 됐습니다.” 어제 회사에서 온라인 입금한 돈이 제대로 들어갔나 보다. 그렇다면 숙박은 됐고 주변 추천 음식점을 알아볼까. 모바일 인터넷에 접속해 적당한 가격대로 몇 곳을 골랐다.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휴대폰 결제가 가능해서 현금을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금만 받겠다고 배짱을 부리면 안 가면 되니까. “김혜수씨, 들어오세요.”간호사가 사원증을 건네 받고 컴퓨터로 확인한다. 지금까지 치과에서 진료받은 내용과 결제내역이 뜬다. 저 번에 사랑니를 뽑으러 왔을 때 치료비가 모자라 겨우 몇 만원을 간호사 앞에서 인터넷으로 마이너스 통장대출 받느라고 정말 창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차라리 나중에 주겠다고 할 걸…. 치과를 나오는 길에 동생이 보낸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대하고 복학하더니 용돈이 영 모자라는지 매번 문자로 `SOS`를 보낸다. 핸드폰으로 은행 사이트에 접속해서 동생 핸드폰에 5만원을 넣어줬다. 집에 오는 길에 들린 대형 할인마트는 휴가철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사서 카드로 계산을 하고 나왔다. 짐도 무거운 차에 날씨까지 더워 집에 오는 길엔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 교통카드로 결제기를 갖춘 차다. 기본요금 1,600원만 카드로 찍으면 집에 도착할 수 있다. 카드로 계산하면 택시 아저씨와 거스름 돈을 주고 받지 않아도 된다. 혹시 잔돈을 `팁`으로 줘야 하는 `무거운 분위기`가 되지 않을 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아파트에 들어서다 보니 우편함에 지지난 주 걸렸던 속도위반 과태료 고지서가 도착해 있었다. 옛날 같으면 은행까지 고지서를 들고 가야 했지만 지금은 구청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인터넷으로 내면 된다. 이번에 내면 휴가가는 길에 안 걸릴 수도 있다(?)는 엉뚱한 믿음에 컴퓨터를 켜고 납부를 했다. 구청은 이 시스템으로 과태료 수입이 꽤 짭짤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에 들어온 김에 홈쇼핑 사이트에 접속했다. 의류 몰에 들어가보니 벌써 가을 옷이 걸려있었다. 배너 광고에선 이번 주말 개봉할 영화가 번쩍거렸다. 일단 휴가기간 동안 못 볼 남자친구랑 다음 주에라도 같이 보기 위해 두 장을 예약했다. 컴퓨터 옆에 있는 리더기에 IC카드를 넣고 계산도 마쳤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이제 `전자화폐`를 쓰는 일이 익숙하다. 이메일 창을 열어 영화평론과 예약시간을 첨부하고 휴가를 잘 다녀오겠다는 내용을 써서 남자친구에게 보냈다. e-메일을 정리하다가 삼성생명에서 보낸 레저생활 보장용 상해보험 광고메일을 열었다. “8,400원만 내도 1년 동안 4,000만원까지 보장해준다고?” 값도 저렴하고 주말마다 놀러 나가는 사람한테 좋을 것 같아 가입신청 버튼을 누른 뒤 전자서명을 했다. 보험료는 카드로 결제했다. 친구들이 도착할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어 케이블 방송을 켰다.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가 아까 인터넷 쇼핑몰에서 본 스커프를 걸치고 나온 모델이 나오는 채널에서 멈췄다. “값이 아까 보다 만 원 이상 싼 걸?” 리모콘으로 `구입` 버튼을 누르니 화면에 `결제된 금액은 다음 달 시청료에 청구됩니다`라는 문장이 떴다. 순간 또 충동구매를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로 홈쇼핑 구매를 할 때만 해도 숫자를 누르는 동안 한 번 더 살까 말까를 생각했는데 리모콘으로 결정하는 건 충동구매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스카프야 비싼 것도 아니니까` 생각하며 털어버렸다. 곧 친구 3명이 집에 모였다. 짐을 다 싣고 출발하려는데 어머니가 현금을 챙겨 주셨다. “여행 갈 때는 그래도 현금이 필요하다니까.” “휴대폰 충전기만 잘 챙겨가면 돼요.”하면서도 슬쩍 돈을 받았다. 어디든 보탤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주유소에 들렸을 때도,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면서도 카드 한 장으로 다 해결됐다. 현금이 언제 필요할까 생각 하다가 집을 출발하기 전 잊어버린 게 생각났다. “아차, 교회에 십일조 내야 하는데!” 헌금을 휴대폰으로 내는 건 신에게 불경해 보이는 것 같아 영 꺼림칙 하다고 생각해왔다. 교회에 가기 전엔 일부러 돈을 출금해 흰 봉투에 넣어 내곤 했다. 하지만 이번 주엔 일요일에 교회를 갈 수 없으니 헌금을 휴대폰으로 하는 수 밖에. 휴게소에 들렸을 때 휴대폰으로 교회 사이트에 접속했다. `십일조를 결제하시겠습니까?``예`버튼을 두 손가락으로 누르면서 “아멘~”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친구들이 옆에서 보다가 픽 웃는다. 작년 겨울에는 넷이서 `구세군 냄비에 1,000원을 넣으시겠습니까?`에 `예`를 누른 뒤 입을 모아 “땡그랑~”하고 외친 기억이 났다. 점심을 먹으면서 축구선수 박지성의 열혈 팬인 친구 한 명이 아인트호벤 홈페이지에서 그의 유니폼을 싼 값에 구입했다고 자랑했다. 예전 같으면 우리나라 카드로 결제가 불가능했겠지만 어느 나라의 물건이든 안방에 앉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회사 옆자리의 여직원은 일본의 무슨 화장품인가를 비싼 돈 들여 온라인 결제로 샀는데 배달 과정이 핸드폰으로 `생중계`된다고 자랑이다. 문자 메시지가 올 때마다 “어머 비행기에 화장품이 실렸대”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저녁을 맘껏 먹고 맥주도 넉넉하게 취해서 콘도 방에 도착하자 현금을 쓸 곳이 떠올랐다. “야, 우리 고스톱이나 한 번 할까?”아직 개인과 개인은 현금처럼 직접 전자화폐를 주고 받을 수 없다.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으면 도중에 자금세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머니 말씀이 옳았다. 결국 현금이 한번 쯤은 필요한 것 아닌가. <●특별취재팀●성화용(팀장)ㆍ이진우ㆍ신경립ㆍ최원정ㆍ김홍길ㆍ s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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