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학 로스쿨 출신인 B씨는 최근 삼성그룹의 채용공고를 보고 만감이 교차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대리급으로 채용한다는 공고였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변호사라면 당연히 법조팀 임원으로 모셔가던 기억이 뚜렷했지만 그래도 그는 망설임 없이 원서를 제출했다. B씨는 "로스쿨 활성화로 법조인의 위상도 달라졌지만 삼성 직원의 사회적 인식도 높아졌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20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삼성전자 등 10개 계열사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경력직 채용을 진행 중이다. 조건은 대리급이다.
삼성그룹이 대리급으로 변호사를 채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지난 7월 로스쿨 졸업 예정자들을 과장급으로 채용한 전례에 비춰봐도 빠른 변화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삼성그룹은 인재 영입차원에서 변호사를 임원으로 모셔왔지만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쏟아지면서 이제는 대리로 직급을 대폭 낮춰 채용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에 채용되는 변호사들은 법무팀에서 법무에 관련된 업무 대신 마케팅과 기획ㆍ인사 등 일반 팀에 배치될 예정인 만큼 그동안 특별대우를 받아왔던 법조인력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
재계는 이번 삼성의 변호사 채용을 계기로 대기업에서 변호사 프리미엄이 사라지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미 2월 졸업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9월에 선발한다는 것은 변호사이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을 뽑는다는 점에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의미도 있다"면서 "그런 점에서 이들을 일반 부서에 배치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사법고시 출신 변호사와 달리 형법ㆍ민법ㆍ형사소송법 등 광범위한 법률 지식을 공부하지 못했다"며 "그런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일반 부서로 배치하면 각자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역시 삼성그룹만큼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전형에 대거 몰릴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과거 사시 출신 변호사들을 기수별로 최소한 한 명씩 임원급으로 영입했지만 이번에는 대리로 뽑는 다는 것이 변호사 과잉 시대를 알리는 것 같다"며 "특히 삼성은 이공계 박사를 과장으로 뽑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변호사가 기업에서 대접받는 시대도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대리급 변호사를 뽑는 계열사들은 삼성전자와 삼성SDSㆍ삼성디스플레이ㆍ삼성생명ㆍ삼성화재ㆍ삼성카드ㆍ삼성증권ㆍ삼성정밀화학ㆍ삼성물산ㆍ삼성엔지니어링이다. 지원 대상은 2월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자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다. 채용 대상은 전체 31개 직군으로 지원자의 능력에 따라 최소 31명에서 최대 28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삼성전자는 2월 졸업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 9명을 선발했고 7월에는 내년 2월 졸업예정자들을 대상으로 인턴으로 선발해 내년 초 과장으로 선별, 채용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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