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진모(67)씨는 지난 5월 만기가 돼 회수한 회사채 투자금액 5,000만원을 다시 연 4%대의 다른 회사채에 투자했다. 진씨는 올 들어 두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로 채권이나 은행 예금의 수익률이 떨어지자 주식이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도 고려해봤다. 하지만 위험이 너무 큰 것 같아 선뜻 투자하지 못하고 결국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자금을 잠시 묶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최근 국내는 물론 중국 등 해외 증시가 너무 불안해 결국 회사채에 다시 투자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외 증시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시중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비록 수익률은 그리 높지 않지만 방향성을 가늠하기 힘든 주식시장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채권이나 금, 달러 자산 등으로 투자자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2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채권혼합형 펀드에는 총 1조488억원이 몰려 올 들어 월별 기준 최대 자금이 유입됐다. '시중금리+α'의 절대수익을 추구하는 '채권알파형 펀드'까지 포함하면 모두 1조2,558억원이 유입돼 지난달 국내 모든 펀드로 들어온 자금(2조977억원)의 60%가 채권혼합형 펀드로 몰렸다.
펀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아닌 직접 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개인이 매수한 채권은 1,977억원어치로 4월 1,102억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난달 중소형주식 펀드마저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자 주식시장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채권혼합형 펀드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변동성이 심해지기 시작한 6월만 해도 위험자산 투자를 꺼리지 않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 증권사 WM센터 관계자는 "최근 회사채나 달러 예금, 분산투자 가능한 랩 상품 등에 대한 문의가 부쩍 늘었다"며 "최근 가격이 급락한 금에 투자해도 괜찮겠느냐고 묻는 고객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들어 금 거래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거래소(KRX) 금 시장의 지난달 하루 평균 거래량은 9,818g으로 전 달보다 3,500g가량 늘었다. 특히 지난달 20일에는 하루에만 2만7,756g램이 거래돼 올 들어 하루 거래량으로는 최대치를 기록했다. 28일부터 거래가 시작된 'KINDEX 골드선물레버리지(합성H)' 상장지수펀드(ETF)도 매일 30억원 이상의 거래금액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금값이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있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서 금은 여전히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시장전문가들은 당분간 위험 자산보다는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집중되는 모습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을 비롯해 글로벌 증시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데다 국내 증시는 대내외 악재로 박스권에 갇혀 이렇다 할 상승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시가 추세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전까지는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유겸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전 세계 금융시장이 위험자산을 회피하는 추세"라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종식, 추경 등 일부 호재는 글로벌 악재가 소멸된 8월 중순 이후에야 투자 소재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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