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제에 따라 기기값이 얼마인지 알 수 있게 표시하는 제도긴 한데…."4일 방문한 신촌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 사장은 가격표시제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매장에는 가격을 표시해두지 않았다. 이동통신사들이 잇따라 도입한 '휴대폰 가격표시제(SK텔레콤)', '페어 프라이스(Fair priceㆍKT)제도' 같은 일종의 '정찰제'가 아직은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SK텔레콤이 지난 1일부터 실시한 가격표시제는 휴대전화 기기값을 모든 매장에서 표기하도록 해 '바가지'를 막고 매장 사이의 공정한 경쟁을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지난 7월부터 도입된 KT의 페어 프라이스는 매월 고시하는 가격대로 휴대전화를 판매토록 하는 제도다. 가격표시제가 각 휴대전화 매장끼리 투명한 경쟁을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페어 프라이스는 모든 매장에서 동일 단말기를 동일한 값에 구입하도록 했다. 문제는 두 제도 모두 아직은 시장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페어프라이스의 경우 KT 본사가 직접 사업권을 준 대리점에는 확실히 적용돼있었지만, 본사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지 않는 판매점에서는 페어프라이스 가격표를 찾아볼 수 없었다. SKT의 가격표시제 역시 대리점과 판매점 사이의 차이가 명확했다. 강남ㆍ명동ㆍ신촌 등지의 SK텔레콤 대리점에는 휴대전화 가격이 약속한듯 표시돼있었지만, 판매점은 그렇지 않았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정찰제 때문에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멤버십 포인트를 20만원어치씩 준다거나 아예 현금을 통장으로 입금해주는 등의 꼼수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가격차 역시 그대로다. 강남의 한 대리점 직원에게 HTC의 '디자이어 HD' 가격을 묻자 기기값이 18만원대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공짜폰'이었다. 대리점 직원은 "온라인 쇼핑몰도 페어 프라이스 가격대로 한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KT의 공식 온라인 쇼핑몰에만 해당되는 사실이었다. KT 관계자는 "페어 프라이스는 강제성이 없는 제도"라며 "판매자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프로모션까지 제재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동통신사들의 지나친 보조금 경쟁이 지속되는 한 정찰제가 소용없을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가격을 표시하면 투명한 경쟁이 이뤄지고 소비자들의 수고를 덜 수 있다'는 단편적인 논리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A사가 자사 대리점에 보조금을 많이 풀면 B사로서도 A사를 따라 보조금을 더 많이 지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부터 이동통신 3사의 마케팅비용을 매출 대비 일정 수준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이를 어겨도 제재가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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