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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고령화의 빠른 진전으로 앞으로 복지지출을 지속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세금을 안 걷고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장하준(사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13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제도와 경제발전'을 주제로 열린 특별강연에서 "복지지출을 1~2% 늘리는 것은 세금 안 걷고 할 수 있지만 10~20% 늘리는 것은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의 공공복지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서는 멕시코를 제외하고는 꼴찌 수준"이라며 "프랑스나 벨기에 등 선진국은 복지지출이 30~35%에 달하고 지출을 안 한다는 미국도 20%나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공공복지 지출을 지금보다 1~2% 늘려서는 안 되고 5~20%는 늘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증세를 위해서는 정부가 세금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세금에 대한 개념이 잘못돼 있는 게 많다"며 "세금은 정부가 걷어가서 어디다 태워버리든지 묻어버리든지 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쪽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른 주머니로 옮겨 공동구매로 싸게 사회보험을 구입하자는 게 복지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세법개정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장 교수는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세금을 내가지고 잘 쓰면 자기들한테도 좋은 거라는 것을 납득을 해야 한다"며 "무조건 세금을 올리는 게 좋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덜 걷는 게 좋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과거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시장경쟁 자체를 제한하는 모델과 기본적 복지제도를 만든 뒤 시장이 만든 결과를 수용하는 미국식 모델, 높은 재분배로 불평등을 낮추는 유럽식 모델 세 가지를 제시한 뒤 한국은 유럽식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식 모델은 최종적으로는 평등할지 모르지만 불공정한 게 많아 좋은 시스템이 아닌데다 미국식 모델도 불평등을 증가시킬 우려가 있어 우리나라 상황에 맞지 않다"며 "결국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유럽식 모델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유럽식 모델대로 복지를 확대하려면 모든 계층이 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며 "누진세와 시민권 원칙에 의해 돈이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부담을 더 지고 돈이 적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지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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