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주채권은행의 재무구조 평가에서 자칫 '잘못된 평가'를 받지 않을까 잔뜩 긴장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44개 대기업 그룹에 대해 지난해 말 결산자료를 토대로 주채권은행에 재무상태를 평가, 문제가 있는 그룹에 대해서는 자산매각 및 계열사 정리 등을 유도해나간다는 계획을 밝혔다. 22일 업계 등에 따르면 이들 대기업 그룹은 주채권은행이 과거의 기준에만 의존해 자칫 잘못된 평가를 할까 우려하고 있다. 재무상태평가는 주채권은행이 연말 결산이 끝나고 매년 실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평상시와 너무 다른 상황이 전개됐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채권은행의 과거 재무구조 평가는 부채비율, 적자전환 여부 등 재무건전성에 초점이 맞춰져 진행돼왔다"며 "지난해 한국 경제를 휩쓴 경제위기를 고려해볼 때 이 같은 평가 잣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경제여건은 정상적으로 영업활동을 한 기업도 적자회사로 몰아넣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실제 환율 급등으로 앉은 자리에서 외화 부채가 급증한 기업이 상당수다. 또 환헤지를 위해 파생상품에 가입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본 그룹도 적지 않다. 해외 업체와 맺은 도급계약이 급작스레 취소되기도 하고 해외 기업 파산으로 돈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설상가상으로 수출은 물론 내수도 위축되면서 인수합병(M&A) 등 무리한 투자를 주의했는데도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이 적지 않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A그룹의 한 관계자는 "우리 그룹이야 환율 급등에 따른 외화부채 증가 및 파생상품 손실 등이 적어 그래도 타격을 덜 받았다"며 "하지만 다른 그룹 중에서는 영업이익은 흑자를 유지해도 장부상은 적자가 난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B그룹의 한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이 어떤 기준 아래서 어떻게 평가 할지 현 상황에서는 알 수 없다"며 "평가 과정에서 급격히 악화된 지난해 경영환경을 고려하지 않을까 솔직히 두렵다"고 토로했다. 이렇다 보니 주채권은행의 재무구조 평가를 앞두고 전경련 등 경제단체에는 은행이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떻게 평가를 할지에 대한 문의가 부쩍 늘고 있는 상태다. 옛 방식대로 평가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악화된 경영환경을 감안해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기업들의 운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이 기업 재무구조를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문제는 과거 기준으로 하게 되면 우량 기업인데도 불량 기업으로 간주되면서 경쟁력 있는 회사가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가 이후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44대 그룹 평가시 바뀐 경영환경을 고려해 새롭게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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