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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1원의 경제학' 궁핍한 시대 이겨낸 시인의지혜

『1원. 화폐의 최소단위, 월급봉투에도 분명히 기록은 되어 있건만 사사오입으로 해결되어버리고 아예 계산에 넣지도 않는 돈.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면 작은 가랑잎처럼 하찮게 뒤집어지는 무게. 나는 왜 그까짓 것을 고집스럽게 옹호하는가?』이향아 호남대 교수(시인)는 작은 돈을 우습게 여기는 세태에 대해 이렇게 항변한다. IMF(국제통화기금) 시대에 새삼 떠오르는 돈에 대한 단상이자 철학이다. 흔히 시와 돈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옛 선비들의 전통이 이어져서일까. 그러나 돈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 특히 요즘처럼 다시 궁핍해진 시대에서는 돈에 대한 상념이 어지러워진다. 시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제목은 「1원의 경제학」(자유지성사 펴냄). 김춘수, 홍윤숙, 황금찬등 29명의 시인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어떤 지혜와 용기로 건뎌냈는지 말해주는 책이다. 한국전쟁과 보릿고개 시절의 사연과 60~70년대 산업화의 격랑 속에서 겪어야만 했던 돈에 울고 돈에 웃던 이야기들이다. 『어머니는 해종일 물감장사를 하다보면 콧물마저도 무지개빛이 되는 많은 날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동저고리 입히는 마음으로 나를 키우기 위해 물감 장사를 하였습니다.』 강우식 성균관대 교수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고달픈 회고가 아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물감을 팔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했던 어머니를 무지개빛 꿈의 전도사로 기억한다. 와우아파트 언저리에 방을 얻어 살던 시인 노향림씨의 남편은 허풍쟁이였다. 야간학교 한문선생이었던 남편의 월급날이 되면 학생들이 먼저 중국집에 몰려가 선생님 이름으로 자장면을 실컷 먹고 가면 달랑 몇푼만 찾아오는 남편 때문에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돈이 떠난 자리를 문학이 채워주었으니 그렇게 절망만은 아니었다. 조실부모하고 아르바이트로 대학교수까지 올라간 유승우 인천대 교수는 『아내의 별명은 500원 아줌마였다』고 말한다. 아내가 청게천 길가에서 팔던 500원짜리 옷만 사다 입었기 때문이다. 그는 『중학교 교사의 박봉으로 조카들의 중고등학교 6년 동안의 등록금을 내고, 대학 입학금까지 해주었다. 물론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 아내가 한 것이다』고 토로한다. 시인의 아내는 시조카와 아이 넷 그리고 남편의 박사과정을 뒷바라지했다. 중학교 교사 13년, 대학교수 20년. 이렇게 선생의 월급으로 구의동에 건평 49평의 이층집을 마련했다. 김춘수 시인은 『비가 와서 땅이 질척거렸지만 큰딸에게 비구두를 사주지 못해서 그 애는 구두에 비닐을 감고 다녔다』고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때 그시절, 식솔부양은 커녕 차비도 모자라던 강사료로 다섯명의 자식을 키우던 시절. 그시절이 꿈만 같은데 내가 무슨 고생을 했다는 느낌은 추호도 없다.』 때문에 성찬경 시인의 다음 독백이 「1원의 경제학」을 받쳐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유행에 결연히 맞서서 자기 식의 생활철학을 확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검소한 생활」도 그 방법 중의 하나다. 상업주의의 요물이 제일 거북해하고 싫어하는 상대가 바로 이러한 생활태도이다』 『1원의 경제학」은 IMF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난과 헛된 욕망 모두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존중하며 절제의 미덕을 배워야함을 깨우쳐주는 책이다. 【이용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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