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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웅 휴먼칼럼] 이집트 왕자

「출애굽」의 영웅 모세의 죽음은 비극으로 끝난다. 황야에서 40년 방황을 마감한 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밟으려는 찰나 그의 신 여호와가 모세에게 죽음을 명한 것이다. 죽음을 명한 이유는 가나안 땅에 닿기 1년전 모세가 여호와의 지시를 거역했기 때문이다.이 여호와의 지시라는 것이 좀 석연찮다. 물이 떨어져 군중들이 반란의 기미를 보이자 모세가 여호와에게 해결책을 간청했다. 여호와는 군중들을 바위 앞에 모으라 지시한 후 모세에게 『물아 솟으라!』 소리지르게 한다. 물이 솟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군중들의 변덕에 진절머리가 난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내려친 것이다. 바위를 내려치라는 대목은 당초 여호와의 지시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모세의 가나안 입성의 저지를 설명하는 가장 유권적인 해석이다. 성서학자들의 견해는 좀 다르다. 모세가 지은 중죄가 따로 있는데 성서 편집자들이 이 중죄를 가리고 그저 「물 솟는」 지시를 어긴 탓으로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학자는 모세가 이따금 여호와의 대권을 넘나들었고 막판에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기 때문이라고 정치적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해석들 가운데 모세의 죽음이 그의 누나 미리암의 죽음을 애도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은 가장 슬픈 대목의 하나다. 이상은 지난주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커버스토리 「모세는 누구인가」에 등장하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의 하나다. 미리암은 하나밖에 없는 모세의 친 누나다. 또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4명의 여자 예언자 가운데 하나이자 그 유명한 홍해를 건넌 직후 이를 자축하기 위해 유대 군중앞에서 춤과 노래를 유도해낸 인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골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띄워진 모세가 이집트 공주에게 발견됐을 때 공주에게 슬며시 나타나 아기의 유모라며 친 어머니를 소개했던 슬기로운 누나였다. 젖먹이 모세는 그후 이집트 궁에서 왕자로 성장한다. 이 누나는 그러나 황야의 지도자가 된 모세에게 반기를 든다. 특히 모세가 이민족 여인과 결혼한 것을 대놓고 성토한 것이다. 성서학자들은 모세의 새 아내가 흑인 여인이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리암의 성토와 비난에는 모세의 친형 아론도 합세하며 동기간의 이런 골육상쟁에 마침내 여호와가 진노, 미리암에게 문둥병을 안겨준다. 그 미리암이 죽어 땅에 묻힐 무렵 문제의 「물 솟는」사건이 터진 것이다. 누나의 죽음을 애도하려는 모세에게 군중들은 애도는 커녕 갈증과 불평만 털어놓는다. 누나의 장례에는 홍해를 건넌 직후 누나가 유도했던 노래와 춤이 그대로 재연됐다. 동기간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군중에 대한 허탈감에 빠진 모세가 분별력을 잃고 지팡이로 바위를 내려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모세의 죽음을 다루는 타임지의 이야기 전개에는 무슨 의중이 깔려 있다. 그의 죽음을 우선 물과 연결시키고 이 물을 연결고리로 또다른 물 사건, 즉 젖먹이 동생 모세의 표류를 주도하는 누나 미리암의 등장을 유도해낸다. 그리고 타임지가 터놓은 물길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독자들은 알게 모르게 고대 이집트 국왕 파라오의 왕궁에 닿고 거기서 왕세자 람세스 2세와 함께 성장하는 또하나의 이집트 왕자 모세를 만나게 된다. 「이집트 왕자」는 미 영화사 드림워크(DREAM WORKS SKG)의 제프리 카젠버그사장이 제작한 영화 이름이다. 지난 19일부터 전세계 50개 국가에서 동시 상영된 금년도 화제의 만화영화다. 「인어공주」와 「라이언 킹」을 히트시킨 후 그 여세를 몰아 만든 만화영화로, 아이디어는 유대계 영화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가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 400만의 독자를 과시하는 타임지 입장에서 영화 한편을 커버스토리로 다룰 수는 없는 일. 따라서 크리스마스를 보름 뒤로 둔 연말과 해마다 이때쯤이면 겪는 성서적 분위기를 엮어 구약의 주인공 모세를 커버로 띄워 이 만화 영화를 껴안은 것이다. 저널리즘과 커머셜리즘이 딱 소리나게 들어 맞은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한국 저널리즘이 주목할 대목이 하나 있다. 타임의 커버스토리가 우리 언론의 취재처럼 1주일 또는 보름간의 작품이 아니고 올 년초보터 연말 크리스마스를 겨냥했던 노작(勞作)이라는 점이다. 또 글을 쓴 기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미국 학계와 신학계에 그대로 교과서가 될 만큼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는 사실이다. 편집 뿐 아니라 취재도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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