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아이러브乳] 눈덩이 빚에 원유 땡처리·젖소 도축까지… "희망이 절망으로"

<2> '최악의 한해' 보내는 낙농가 가보니

목장 현대화 하느라 대출… 원금은커녕 이자도 벅차

원유 제값 받기 어려워 사료·인건비 빼면 손해

"얼마나 버틸지…" 한숨만

6일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의서 목장주 임정혁씨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축사 속 젖소들을 바라보고 있다. /권욱기자


지난 6일 찾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의서 목장. 우유 소비가 늘어나는 여름철을 앞두고 젖을 짜는 작업으로 부산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무척 한산했다. 1차 착유가 끝난 때라 젖소들은 오후 젖 짜기를 앞두고 축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목장 안은 가끔 젖소 울음소리만 들릴 뿐 고요했다. 하지만 방문에 앞서 "늘어나는 잉여 원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 전에 젖소 몇 마리를 도축했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조용함 속에 알 수 없는 적막함도 느껴졌다. 젖소들의 큰 눈망울에 정든 동료를 보낸 깊은 슬픔이 담긴 듯했다.

목장주 임정혁(36)씨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역력했다. 긴 한숨을 내쉬며 "날씨가 좋아 착유량이 늘어난 탓이니 하늘을 원망한다"는 임씨의 말에서 현재 낙농가가 직면한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2002년부터 부친의 뒤를 이어 13년간 목장에서 일하며 베테랑 낙농 후계자로 인정받는 그에게도 '우유 소비 감소→원유량 증가→잉여 원유 급증' 여파로 친자식처럼 키우던 젖소를 억지로 도축해야 하는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올해 떠나 보낸 젖소는 총 6마리. 전체 62두 가운데 10%나 된다.

착유량을 줄이기 위한 서울우유협동조합 결정에 따라 목장당 3마리만 도축하면 됐지만 그는 6마리를 계획 도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유 소비는 나날이 줄고 있는데 이상 기온 등 따뜻한 날씨 영향으로 착유량이 크게 늘면서 ℓ당 1,015원의 제값 받기조차 어려워서다. 현재 보유 쿼터 이상의 원유를 거래할 때 가격은 ℓ당 300원 정도. 통상 거래가의 3분의1 수준을 밑돈다. 13년 전인 2002년에도 ℓ당 315원을 쳐줬지만 오히려 더 떨어졌다. 원유 1ℓ 가격의 60%가 사료·인건비여서 생산해봤자 손해 보는 장사였다. 목장을 살리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피붙이처럼 정성껏 키우던 젖소 6마리를 떠나보낸 것이다. 이들 중 10년 이상 함께한 젖소가 절반이 넘어 아픔은 더 컸다.

임씨는 "13년간 낙농업에 종사하면서 병든 젖소도 포기하지 않고 열과 성의를 다해 키웠다"며 "이유를 막론하고 젖소를 떠나 보낼 때는 친자식을 잃는 듯 가슴 한 편이 아려왔다"고 토로했다. 이어 "34년간 낙농업에 종사하며 목장 일에 잔뼈가 굵은 아버지도 젖소를 도축하는 날이 되면 말수가 줄고 식사도 거의 못했다"며 "낙농업 종사자 누구나 정든 젖소를 도축하는 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라고 덧붙였다.



임씨는 젖소들에게 사료를 주기 위해 다시 축사로 발길을 돌리며 또 다른 어려움을 털어놨다. 대표적인 고충은 낙농업이라는 1차 산업에 종사하면서 느낀 어려움이었다. 낙농업의 경우 수도권 지역의 빠른 도시화 속에 이미 본거지가 충북 등으로 옮겨지고 있다. 그의 삶의 터전인 남양주만 해도 10년 전 500가구 이상이었던 낙농가는 이제 50곳도 안 된다. 게다가 대형화 바람이 불면서 두수나 보유 원유 쿼터를 늘려야 생존이 가능하다. 그도 목장 시설을 현대화하기 위해 6억원가량을 대출했다. 하지만 낙농업계에 찬바람이 불면서 희망의 불씨였던 대출금은 막대한 짐이 돼 삶을 억누르고 있다.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우유 소비가 급감하면서 원금 상환은커녕 이자 막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여기에 규모의 경제를 위해 1억원을 추가로 대출 받아 쿼터 매매에 나서려 했지만 최근 몇 년 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ℓ당 쿼터 거래 가격은 69만원 정도. 원유가 남아도는 시기임에도 오히려 매매가 크게 늘면서 10년 전보다 6~7배나 올랐다.

임씨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는 부분은 사료 가격이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라며 "사료마저 올랐다면 낙농업계 자체가 고사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서울우유협동조합 소속이어서 사료 단체 구매, 장비 대여 등의 혜택을 받아 다른 경쟁 낙농가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다른 낙농가들은 아마 하루가 다르게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