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를 계기로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기업들이 본격적인 투자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미 산업계에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같은 위기상황일수록 미래성장동력을 발굴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로이터는 15일 "구글의 인수ㆍ합병(M&A)은 그동안 현금뭉치를 깔고 앉아있던 다른 기업들도 본격적 투자에 나선다는 신호탄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구글이 흔들리는 미국 경제에 산소호흡기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마켓워치 역시 "시장이 원했던 일이 마침내 벌어졌다"며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기업들이 겨울잠에서 벗어나 투자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그동안 기업들이 돈줄을 풀어 고용을 늘리는 것만이 재정적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지적해왔다. 기업들의 투자회복 기대감을 높여주는 것은 무엇보다 산업계 전반에 굵직굵직한 M&A 발표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5일 하루에 발표된 M&A만 모두 190억달러에 달해 '머저 먼데이(Merger Mondayㆍ합병의 월요일)'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세계 최대 석유 시추업체인 트랜스오션은 동종 업체 애커드릴링을 현금 22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고 미국 케이블TV운영사인 타임워너케이블도 인사이트 커뮤니케이션을 현금 30억달러에 사들일 계획이다. 세계 최대 곡물회사 카길 역시 21억6,000만달러에 네덜란드 사료업체 프로비미에 대한 M&A 의사를 밝혔다. 마켓워치는 더블딥(경기회복 후 다시 침체)에 대한 공포가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투자를 시작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또다른 이유는 M&A나 해외시장 진출 등에 필요한 실탄을 넉넉히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S&P500에 속한 기업이 확보한 현금은 금융사를 제외하고도 1조1,20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한 2008년 3ㆍ4분기(7,030억달러)보다 60% 가량 늘어난 수치다. 현금을 쌓아 위기에 대비하려는 기업의 보수성향이 더욱 강해진 셈이다. 애플의 경우 지난 6월 기준 현금이 761억달러에 달해 미국 재무부의 가용현금(737억달러)을 웃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여유자금이 정보기술(IT) 등 특정분야로 쏠리면서 과거의 닷컴버블이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국 벤처캐피털협회에 따르면 올 2ㆍ4분기에 이뤄진23억달러 규모의 벤처기업 투자 가운데 15억1,000만달러가 IT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구글이 실제 가치에 비해 부풀려진 가격으로 모토로라 휴대폰부문을 인수한 것도 IT기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열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주요 기업들이 당분간 현금 확보에 더 치중하면서 좀더 상황을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