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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만능주의 경계해야

`송사는 패가망신`이라는 말이 있다. 재판을 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소송천국인 미국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각종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어 기업경영의 새로운 부담이 되고 있다. 먼저 회사측에 잘못이 없어도 손해를 배상토록 하는 이른바 무과실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제조물책임법(PL법)이 작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또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증권집단소송제 역시 올 상반기중 도입키로 여야가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재경부는 소비자 집단소송제도를, 공정위는 공익소송제도를 내년중에 도입할 계획이다. 이러한 제도들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도입된다면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이라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 없다. 정부가 이처럼 기업관련소송제도를 대거 도입하려는 것은 아마도 소비자나 투자자들의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검증되지 않은 낯선 제도들을 굳이 도입하지 않더라도 IMF 이후 우리 기업의 투명성과 지배구조가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에 소액투자자나 소비자 보호문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오히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은 늘어나는 소송과 이에 따른 부담증가가 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상공회의소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증권관련 소송건수는 지난 97년에 비해 3배 가량 늘어났고, 이러한 소송에 대비해 기업이 가입하는 손해배상책임보험 부담도 8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지금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각종 소송관련제도까지 도입된다면 소송의 폭발적 증가에 따라 기업부담도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 뻔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면서 미국사회의 골칫거리인 `소송병`만 수입하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닌지 냉철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외출하던 부인이 현관 앞에서 눈에 미끄러지자 남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는 웃지못할 일이 실제로 나타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다. 또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변호사가 제일 먼저 도착하는 것을 빗대 `앰뷸런스 체이서(ambulance chaser)`라는 말마저 생겨날 정도다. 그러나 소송의 남발로 인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기업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기업들을 상대로 한 제조물책임소송은 4만건이 넘었고, 다우코닝 등 적지않은 기업들이 소송에 휘말려 도산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실은 주주중시, 소비자중시경영의 대명사라는 미국기업들이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할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기업들이 집단소송제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우량한 기업도 일단 집단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불법여부와 무관하게 주가와 신용도가 하락하는 등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따라서 집단소송에 관한 한 기업은 약자일 수밖에 없고 잘못이 없더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중간에 화해로 종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체 증권집단소송의 95%가 최종판결 전에 화해로 끝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기업의 약점을 파고드는 전문로펌의 출현과 소송남발의 폐해 때문에 미국에서는 그동안 3차례나 법을 고쳤고, 최근에는 하원 법사위원회가 `집단소송공정법`을 입안하기도 했다. 그만큼 미국의 집단소송제가 불완전한 제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미국의 사례를 거울삼아 집단소송제의 가장 큰 문제인 소송의 남발을 철저히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후에 이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소문제를 차단하지 못하면 우리도 미국사회의 전철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집단소송제가 안고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상대적으로 건전한 우량기업에 소송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계를 분식하거나 주가조작을 저지르는 기업들은 부실이 심해 손해를 배상할 능력이 없고 이런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보아야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소송의 실익이 있는 우량기업들이 소송꾼들의 집중표적이 된다. 따라서 선량한 기업들의 소송리스크를 제도적으로 줄여 줘야 한다. 감독당국에서 위법혐의를 인정하거나 불법행위로 인해 기소되는 경우에만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소송제도에 관한 한 세계에서 제일 앞서간다는 미국이 증권집단소송제를 도입한지 70여년이 흘렀다. 소송제도가 기업의 책임경영과 투명경영 확립에 기여했다면 소송건수는 줄어들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기업의 준법경영을 유도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기업이 소송의 홍수에 빠지지 않도록 시기와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교통법규가 지나치게 엄격하면 오히려 차량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는 것처럼 기업의 현실과 관행을 무시한 제도의 도입은 득보다는 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자. <이현석(대한상공회의소 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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