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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곰과 여우

지난 1년간 한나라당 원내대변인을 맡아 여야 협상과 흥정을 보면서, 한나라당은 곰이고 민주당은 여우라는 생각을 했다. 좋게 봐서 전자는 우직하고 후자는 명민하다는 의미지만, 더 솔직한 함의는 생략하겠다. 겉으로 보이는 협상의 이면에 다양한 정치적 이해가 중첩되고 여당이 주는 기득권 이미지와 야당이 주는 피해자 이미지는 전자로 하여금 실질적으로 더 많은 양보와 타협을 강요한다. 예산문제만 해도 그렇다. 한나라당은 예산을 법정기한 내에 통과시키기 위해 여러 쟁점에서 민주당에 계속 양보를 해왔지만, 그간의 여야공방을 보면 한나라당이 결국 곰 짓을 했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은 아직도 '날치기' 용어를 남발하며 단순화된 복지구호로써 예산통과 자체를 비난한다. 그들이 예결위나 계수조정소위에서 복지 민생을 언급한 적이 거의 없고, 민간사찰 관련 정치공방에만 주력했으며, 청목회 사건을 이유로 국회일정을 거부하고 지연한 사실은 별로 문제도 안 된다. 구제역, 연평도 사태가 심각하니 국회에 들어와 예산이라도 제대로 통과시키자고 호소했을 때도 민주당은 듣지 않았다. 예산통과 과정에서의 민망한 상황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어 여당으로서 언급하는 것 자체도 조심스럽다. 그러나 카메라를 의식해 얼굴까지 가리면서 본회의장 유리창을 깨 잠입하고, 그 보좌관들은 여당의원 및 타 야당의원들을 향해 저주ㆍ악담ㆍ욕설ㆍ폭력을 불사하는 믿지 못할 광경은 분노 이전에 서글픔의 극치였다. 그럼에도 결국 한나라당은 국회교착의 타개를 위해 그 의석수의 반도 안되는 민주당에게 '합의'의 미명으로 규정에도 없는 정치적 양보를 또 했다. '명민한' 민주당이 '우직한' 한나라당을 제압해 '다수결' 원칙을 실종시켰다고 단언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이제 국회에서 여야 간 합의가 안 되면 아무 일도 안 된다. 그 초당적 '합의'의 결정판이 전광석화의 속도로 처리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이다. 민심이 들끓자 일단 유보로 가닥을 잡았으나 결국 관철시킬지도 모르겠다. 시비곡직은 차치하고 '같이 합의해' 욕먹게 되면 표쏠림 걱정은 할 필요없다고 계산할 여우와 그 책임을 모두 뒤집어쓸 곰이 국회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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