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외사부(노정환 외사부장)는 허위 수출서류로 사기대출을 받은 유령업체 대표 10명과 대출 브로커 3명을 적발했다고 13일 밝혔다. 이 가운데 유령업체 대표 신모(80)씨 등 4명을 구속 기소하고 브로커 백모(40)씨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나머지 3명은 지명수배했다.
유령업체 대표들이 지난 2008~2013년 사기로 대출 받은 돈은 총 24억3,800만원에 이른다. 이들이 대출금을 받은 뒤 회사를 폐업하고 잠적해버렸기 때문에 보증을 섰던 무역보험공사 등은 나랏돈으로 은행 빚을 갚을 수밖에 없었다.
사기범들은 모뉴엘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수출신용보증'제도의 허점을 악용했다. 이 제도는 자금조달이 어려운 중소 수출업체에 비교적 쉽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한 제도다. 담보 없이 수출실적 등만 제시하면 무역보험공사 등이 보증을 서주고 이 보증을 바탕으로 은행이 대출을 해주는 구조다.
문제는 무역보험공사 등이 업체에서 수출신고필증·부가가치세과세표준증명서 등 해당 서류만 제출하면 실질적인 심사 없이 보증을 서준다는 점이다. 이번에 적발된 업체들은 물품은 전혀 생산하지 않은 채 사기대출만을 위해 만들어진 유령회사였음에도 공사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또 브로커들이 동대문과 남대문 의류 소상인들의 수출실적을 끌어모아 만든 가짜 수출자료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통과시켜줬다.
은행들은 업체가 대출금을 못 갚아도 무역보험공사 등이 대신 갚아주는 것만 믿고 형식적인 서류심사로 수천만에서 수억원을 빌려줬다. 업체에 대한 현장방문을 실시했다고 하지만 미리 예고한 뒤 찾아가는 바람에 업체들은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 유령업체들은 1~2개월 정도 사무실을 빌려 실제로 운영하는 것처럼 꾸미는 한편 브로커가 업체 직원행세를 해 은행 직원을 속이기도 했다. 수출거래 내역서를 심사할 때도 통장 입금내역이 아니라 업체들이 만든 서류를 받아 실제 입금내역을 확인하지도 못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무역보험공사는 나랏돈을 관리하는 일종의 곳간지기 역할을 하는데 별 생각 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모뉴엘 사태 역시 무역보험공사와 은행의 형식적인 대출심사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수출신용보증제도에 대한 보완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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