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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계단 올라갔을 뿐인데요, 뭘…."
'수석합격자'치고 이동환(25ㆍCJ오쇼핑)의 목소리는 너무 차분했다. 그는 4일(이하 한국시간) 캘리포니아주 라킨타의 PGA 웨스트 골프장 스타디움 코스(파72)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퀄리파잉(Q) 스쿨 최종전을 단독선두로 통과했다. Q스쿨 최종전은 예선을 거쳐 추려진 172명이 출전, 6일간 108홀을 돌아 25위 안에 들어야만 내년 PGA 투어 출전권을 얻는 '바늘구멍 레이스'. 이동환은 아시아인 최초의 PGA 투어 Q스쿨 최종전 단독 1위라는 자랑스러운 이정표까지 세웠다. 이날 5타를 줄여 최종스코어는 25언더파 407타. 1타차로 수석합격자가 된 이동환은 상금 5만달러(약 5,400만원)를 챙겼다. 재미동포 리처드 리(24)와 박진(33)은 각각 23언더파 공동 4위, 22언더파 공동 7위에 올랐고 17세 고교생 김시우(신성고2)도 18언더파 공동 20위로 좁은 문을 뚫었다.
경기 뒤 전화 인터뷰에 응한 이동환은 "아시아 최초 기록인지는 미처 몰랐다. 영광스럽다"면서도 "어릴 때부터 꿈꿔온 PGA 투어에 나가게 됐으니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압구정중학교와 경기고를 나온 이동환은 아마추어 통산 18승을 쌓으며 한국 남자골프를 이끌 유망주로 일찌감치 주목 받아왔다. 고교 시절이던 2004년 일본 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그는 2006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최연소 신인왕에까지 올랐다. 프로 통산 승수는 2승(2007 미즈노오픈, 2011 도신토너먼트). 두 번째 우승은 지난해 1월 공군(스포츠센터 관리병) 전역 후 8개월 만에 나온 것이었다.
6일간 계속되는 Q스쿨 최종전을 보통의 선수들은 '지옥의 레이스'라며 혀를 내둘렀지만 '예비역 병장' 이동환은 "컨디션 조절을 잘해서인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마라톤 라운드'에 대비해 무리한 연습보다는 되도록 몸을 편안하게 만드는 데 신경 썼다고 한다. 초반부터 힘을 빼지 않고 중반 라운드부터 승부수를 던진 것도 적중했다. 이동환은 3ㆍ4라운드에서 보기 하나 없이 버디만 15개를 챙기며 단독선두로 올라섰다. 엿새 동안 오버파 스코어를 적어낸 날은 하루도 없었다. 신들린 샷과 퍼트 감각을 뽐냈던 3ㆍ4라운드를 돌아보며 "일본에서도 이틀 연속 그렇게 잘 친 적은 없었다"는 이동환은 "2007년의 경험이 약이 됐다. 그때는 모든 게 얼떨떨했지만 이번에는 올해 초부터 PGA 투어 진출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달려왔다"고 설명했다. 2007년 미국 PGA Q스쿨에서 이동환은 2타가 모자라 고배를 들었다.
이동환은 5년 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 그냥 합격도 아닌 수석합격으로 단단히 '사고'를 친 셈이다. 오는 1월8일 하와이에서 열리는 소니오픈에서 PGA 투어 데뷔전을 치른다. 남은 한 달간 과제는 비거리 늘리기와 체력 보완. "정교함을 요구하는 일본에서 뛰다 보니 드라이버샷 거리가 285야드밖에 안 나온다"는 이동환은 "미국은 대회가 많고 이동거리도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체력을 키우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첫해 목표는 상금랭킹 125위 안에 들어 다음 시즌에도 투어에 남는 거죠. 더 잘되면 우승도 하고 싶고 일본에서처럼 신인왕에도 오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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