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 있는 동안 위안화가 미국달러처럼 흔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중영 경제대화 참석을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조지 오즈본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 15일 마카이 중국 부총리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중국 같은 대국은 글로벌 통화를 보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불과 100년 전 파운드화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지배하던 영국이 굴기(솟아오름)하는 위안화에 먼저 손을 내민 셈이다.
미국이 보수ㆍ진보 간 갈등으로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를 맞으면서 달러 기축통화에 대한 세계의 의구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재빠르게 위안화 국제화 이슈를 끄집어내고 있다. 중국은 이번 기회에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의 문제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는 심산이다. 13일 중국 국무원 산하 신화통신은 미국을 '위선적인 국가'라고 지적하며 "팍스아메리카의 세계질서를 대체할 때가 왔다"고 강조했다. 물론 중국이 미국을 대신해 세계질서를 이끌겠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라는 지위를 지렛대로 삼아 세계 경제질서에서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했다. "달러의 운명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던 배리 에이첸그린 UC버클리 교수의 지적처럼 미국이 자초한 재정위기의 부메랑이 중국 손을 거쳐 미국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위안화는 최근 안정적인 통화가치 유지로 신흥국들과 달리 달러 대비 상승세를 타며 국제화의 기본조건을 갖춰가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의 선행조건인 가치상승으로 국제무역에서 결제통화와 외환보유에 비축통화로 사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 올해 위안화는 글로벌 통화 사용순위 8위에 오르며 러시아 루블과 한국 원화를 앞질렀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하루 평균 위안화 거래량은 달러환산 2010년 340억달러에서 올해 1,200억달러로 3배 이상 늘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위안화 사용 증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 금융당국이 추진한 중국 스타일의 위안화 국제화 단계에 따라 진행됐다.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의 기초단계로 2009년부터 통화스와프를 차근차근 확대했다. 2009년 이후 총 21개 국가 및 지역과 총 2조5,000억위안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초기에는 홍콩ㆍ한국 같은 주변 교역 상대국에서 시작됐지만 점차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가로 확대된 후 지리적으로 중요한 터키ㆍ아랍에미리트를 거쳐 호주ㆍ영국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특히 호주의 경우 4월부터 위안화와 호주달러의 직거래를 시작했고 영국도 이번에 유럽 내 위안화 직거래 창구를 런던에 마련했다. 위안화 역외시장 기지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이미 홍콩은 6월 말 기준으로 위안화 저축액 6,980억위안을 보유하고 있고 싱가포르ㆍ대만도 맹추격하고 있다.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의 경우 싱가포르에서 위안화표시채권인 '라이언시티본드'도 발행하고 있다. 여기다 런던의 부상도 심상찮다. 오즈본 재무장관 방중을 계기로 런던 금융기관에 중국 주식과 채권에 대한 위안화 투자를 개방하고 영국은 런던 금융시장에 진출한 중국 은행의 규제를 풀었다. 경제적 효과를 노린 영국의 중국 자금 유치와 위안화 국제화를 모색하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위안화 국제화는 현재 중국 지도부의 경제철학인 리코노믹스의 주요 목표다. 다만 진행속도는 기존의 로드맵과 달리 한층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했듯이 중국 주도가 아닌 미국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에이첸그린 교수는 달러ㆍ유로ㆍ위안화의 국제통화를 향한 치열한 경쟁이 '죽음의 경주'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제통화의 자리가 하나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에이첸그린 교수는 "달러가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20년도 채 되지 않아 파운드화를 밀어내고 국제통화로 자리잡았듯이 위안화도 예상보다 빠르게 국제화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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