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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정부, 지나친 투자 안전모드 탈피… '혁신 창업가' 육성해야

1부. 데스밸리를 넘자 <1> 벤처 르네상스의 그늘

■ K-벤처 패러다임을 바꿔라

국내 벤처 3만개·매출 205조… 양적성장 이뤘지만

M&A·IPO 등 투자회수 취약하고 지재권 적자 여전

기업가정신 일깨울 인프라·업력별 차등 지원 시급

15일 경기도 성남시 위메이드타워에서 바라본 판교테크노밸리의 모습이 벤처 르네상스기에 접어든 국내 창업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하다.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곳에는 정보기술(IT)과 바이오기술(BT) 등 900여 벤처기업의 임직원 6만여명이 상주하고 있다. /사진제공=이노비즈협회


국내에서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진 지 20년을 넘어서면서 국내 벤처기업 수가 3만개를 넘는 등 양적으로는 급성장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벤처기업의 총매출은 205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4.4%에 달한다. 매출 1,000억원 이상 벤처기업은 454개에 달하고 1조원이 넘는 기업도 8개나 된다. 평균적으로 봤을 때 벤처기업들이 만들어낸 일자리는 일반 중소기업의 6.3배나 많다. 벤처업계에서는 최근 도래한 '벤처 르네상스'를 지켜보면서 1차 벤처 붐의 기억을 새삼 떠올린다. 지난 2000년 봄, 한국은 미국을 제외하고 벤처 생태계를 이룩한 첫 번째 국가로 등장했다. 코스닥시장과 벤처기업특별법이 이끌고 실험실 창업과 기술거래소가 뒷받침한 우리나라 벤처 생태계는 전 세계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하지만 미국발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이후 정부가 벤처 건전화 정책으로 급선회하면서 10년간의 벤처 빙하기를 맞았다.

전문가들은 벤처 르네상스를 다시 꽃피우기 위해서는 양적성장 못지않게 질적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급 중심의 벤처 생태계를 시장 중심으로 바꾸는 노력과 함께 청년들의 기업가정신을 일깨우는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는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등 투자회수 시장이 취약한 반면 정부의 정책자금과 특허출원, 벤처캐피털 의존도가 높은 공급 중심형 벤처 생태계다. 벤처 생태계의 모든 사이클이 고르게 발달해 선순환 생태계를 이루는 미국처럼 '밸런스형'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장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실례로 우리나라 1인당 출원 건수는 0.41건(2012년 기준)으로 미국(0.17건)이나 일본(0.27), 중국(0.05)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지식재산권(IP)을 통한 수입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지식재산 로열티 수입은 49억5,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과 일본이 각각 842억8,000만달러와 119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백만기 지식재산서비스협회장은 "아이디어를 선점하고 특허 등록을 해도 지나치게 잦은 심판 무효 결정과 낮은 배상금 등을 이유로 특허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사장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특허의 질을 높이고 특허 기술을 활용한 사업화에 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등 특허 활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투자회수 시장의 활성화도 시급하다. 우리나라 M&A 시장 규모는 5억달러로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043%에 불과하다. 시장 규모가 400억달러인 미국(0.28%)이나 200억달러인 중국(0.28%)보다 한참 뒤지는 수준이다. 이와 관련, 벤처캐피털의 보수적인 투자 행태를 꼬집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은 창업 성공률과 수익률에 대한 과거 데이터를 토대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거나 대기업 납품이 보장된 기업에 대한 쏠림현상이 심하다. 정부의 벤처 지원 역시 공급 자체는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융자 중심의 자금운용이 대부분이어서 질적 성과는 떨어지는 편이다. 결국 고위험·고수익의 벤처기업이 필요로 하는 투자 중심의 자금 배분이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민화 KAIST 교수는 "정부 지원이 넘쳐나면서 기업가정신보다는 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혁신보다 정부 주변에서 맴돌며 지원금을 따먹는 좀비 기업들이 번성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벤처 르네상스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진취적인 기업가정신을 기반으로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국내 현실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글로벌기업가정신모니터(GEM·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초기창업비율(TEA·Total Early-stage Entrepreneurial Activity·18~64세 인구 중 초기 창업가의 비율)은 6.9로 16위에 그쳤다. 이는 3위에 올랐던 2008년(10.0)보다 크게 떨어진 것은 물론 미국(12.7), 중국(14.0), 이스라엘(10.0)보다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창업 활동 중에서 생계유지가 목적이 아니라 기회를 포착하는 기회형 창업이 매우 저조하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계형 창업 대비 기회형 창업 비율은 0.9로 노르웨이(16.4), 스웨덴(11.1), 미국(2.8), 일본(2.6), 대만(2.8) 등 주요 국가는 물론 혁신주도형 국가의 평균치인 3.2에도 훨씬 못 미친다. 이는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고 신규 진입이 쉬운 생계형 창업이 60%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창업을 기회로 여기는 젊은이들이 쏟아지면서 창업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며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혁신적인 창업가(촹커·創客)들이 벤처 생태계를 이끌고 있다. 강시우 창업진흥원장은 "우리나라의 창업 생태계가 아이디어나 기술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창업보다는 생계유지를 위한 창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청년들이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고 창업에 나서는 분위기가 확산되지 않으면 다시 찾아온 벤처 르네상스도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초기 벤처) 육성에 치우친 정책의 중심축을 포스트-스타트업으로 이동시켜 지속 가능한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벤처기업들은 업력에 따라 필요로 하는 자원이 다를 수밖에 없는 만큼 단계별로 차별화된 지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창업기업들의 업력이 올라갈수록 자금난을 호소하는 기업들은 줄어드는 반면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창업기(19.2%), 성장기(25.0%), 성숙기(25.7%)를 거치며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기존 벤처기업 중심의 양적 확산 방식의 정부 정책에서 벗어나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류해필 한밭대 창업경영대학원 창업학과 교수는 "보육과 자금조달·기술혁신·사업화 등 스타트업 기업의 성장기 전 과정에 걸쳐 입체적인 창업 생태계 지도가 마련돼야 한다"며 "기존의 개발자 위주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모델 중심의 창업 지원으로 전환하는 한편 마케팅·자금·법률·회계 등 시장전문가들이 각 사업화 단계에서 참여하고 필요하면 투자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플랫폼 중심의 벤처 생태계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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