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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 3시간 출퇴근하며 일·가정 챙기는 '무수리'를 아시나요

■ 세종청사 입주 1년 … 공무원들의 애환

2단계 입주로 1만명 둥지… 교통·주거난 갈수록 심화

'무두절' '차관과 장관'… 안타까운 신세 신조어도

정부세종청사에 근무하는 여자 사무관 A씨에게는 세종시에 이주한 다음부터 '무수리'라는 별명이 하나 생겼다. 남편은 서울에 근무하고 자신은 세종시로 출퇴근하면서 일과 가정을 동시에 꾸려나가야 하는 신세를 빗댄 말이다. 무수리와 정반대의 상황에 처한 '공주'도 있다. 남편과 함께 세종시로 이주해 남편이 서울로 역출퇴근하는 여자 공무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만큼 좋은 대접을 받는다는 의미다. 세종시의 한 여자 사무관은 "결혼한 여자 공무원은 출퇴근에 따라 가정 신분이 드러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세종청사 이주 1년이 지났지만 공무원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23일 정부세종청사 2단계 입주로 16개 기관, 4,800여명의 공무원들이 추가로 내려오면서 생활이 더 팍팍해질 것이라는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2단계 입주로 세종시에서 근무하게 될 공무원은 31개 기관, 1만여명으로 늘어난다. 여기에 내년에 법제처·국민권익위원회·국세청 등 6개 기관이 추가로 내려오면 세종시에 둥지를 틀게 되는 공무원은 1만3,000여명에 달한다.

공무원들은 세종시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간관계 단절을 첫손에 꼽는다. 송년모임과 신년모임이 많은 연말에는 더 그렇다. 세종시의 한 공무원은 "서울에 줄지어 있는 송년모임에 전혀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으레 법정기한을 넘기는 새해 예산안 처리 등 국회 일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상경 자체가 어렵다.

미혼남녀 고민은 더 크다. 특히 결혼시장의 '갑'으로 군림하던 여자 공무원들은 남자 만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며 푸념이 이만저만 아니다. 총리실과 기획재정부에서 각종 미팅을 주선했지만 지방공무원으로 전락한 탓에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최근 기재부는 단체미팅으로 재미를 보지 못하자 1대1 소개팅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중은행 직원, 변호사, 의사 등 다양한 직군의 미혼남녀들과 소개팅을 주선했지만 아직 혼사가 성사된 사례는 없다고 한다. 한 미혼 사무관은 "지방에서 근무하는 여성과 만나겠다는 통 큰 남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시 생활도 여전히 불편하다. 가장 큰 문제는 도로 사정이다. 공무원들이 몰려 사는 세종시 첫마을은 저녁만 되면 대형 주차장으로 바뀐다. 첫마을 주변 주차장이 부족해 식당 앞마다 식사하러 나온 공무원들의 차로 도로가 꽉 막힐 지경이다. '차 없는 도시'를 지향한 첫마을은 차선이 2차선에 불과한 탓에 도로 양쪽에 주차된 차로 인해 첫마을 도로는 일방통행으로 바뀐다. 이런 교통체증은 세종시 3단계 이전으로 공무원 수가 늘어나면 한층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회식문화도 달라졌다. 과천에서 근무할 때는 밤 늦게까지 술잔을 주고받았지만 세종시로 내려온 후에는 오후9시30분 이전에 회식을 끝내야 한다. 서울로 퇴근해야 하는 사람이 통근버스 막차를 놓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다. 세종시로 이주한 공무원도 회식 후 귀가는 고민거리다. 대리비나 택시비가 기본 3만원 이상이어서 배(식사비)보다 배꼽(대리비)이 더 크다.

업무 비효율도 여전하다. '국장은 서울에, 과장은 도로에, 사무관은 사무실에' '무두절(국·과장이 서울에 있어 윗사람이 없는 날)' '차관과 장관(낮에는 차에서, 밤에는 여관에서 보내는 신세를 빗댄 말)' 등 각종 신조어가 양산될 정도다. 정부는 화상회의를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활성화는 요원하다. 대다수의 공무원은 여전히 장관과 국회 일정을 따라 서울과 세종시를 오간다. 기재부의 한 고위공무원은 "전화보고로는 팩트(사실)를, 대면보고 때는 진실을 얘기한다는 말이 있다"며 "얼굴을 마주 보지 않는 보고나 회의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화상회의로는 아무래도 깊이 있는 보고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업무방식에도 변화가 적지 않다. 특히 사무관들 사이에서는 국·과장으로부터 '배움'의 기회가 사라졌다는 한탄이 나온다. 과천 시절에는 국장 보고에도 사무관이 직접 들어가 피드백을 받았는데 세종시 이주 후에는 형식적인 전화보고에 그치니 업무능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공무원은 "기존에는 국·과장 눈치를 보느라 퇴근시간이 늦춰지는 일이 많았는데 '무두절'에는 오후6시 칼퇴근하는 공무원도 생겼다"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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