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예산 등 지출은 늘어 균형재정 차기 정부로 넘겨
매년 세부항목 공개 약속… 한번도 안지켜 수정 의혹도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 대선 후보자 시절 국민과 약속했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나라 살림의 대차대조표인 공약가계부를 발표했다. 공약가계부에는 오는 2017년까지 기초연금과 반값 등록금 등 104개 국정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134조8,0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2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재정 당국이 공식적으로 밝힌 실적은 35조원가량이다. 우선 지난해 비과세·감면 정비를 통해 9조2,000억원의 국세 수입을 확보했다. 두 차례의 재정개혁을 통해서는 지난해 20조원, 올해는 6조원의 지출을 줄이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재정 당국이 내놓은 내년 예산안을 보면 총수입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약속대로라면 내년만 해도 국세 수입이 12조원가량 늘어야 하지만 총수입은 지난해 세웠던 중기 재정계획 대비 오히려 10조원가량 줄었다. 공약 가계부상 내년보다 세입이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이라던 2016년과 2017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급증하는 복지 재원 마련을 물론 임기 내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던 약속을 담은 공약가계부 이행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총수입은 382조7,000억원. 공약가계부를 반영해 처음 편성한 올해 예산안의 총수입보다 9조6,000억원 줄었다. 공약가계부에 따르면 2015년은 비과세·감면 정비 및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11조8,000억원의 추가 세입이 발생해야 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세수가 계속 줄어들어 2016년에는 8조6,000억원, 2017년에는 10조2,000억원이 각각 계획보다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 공약가계부에서 했던 약속보다 무려 30조원이 부족한 셈이다.
반면 복지예산 증가 등으로 지출은 대폭 늘었다. 공약가계부 내년부터 2017년까지 세출 절감을 통해 마련돼야 하는 돈은 모두 70조원. 여기에 세입확충 40조원을 더해 110조원의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게 공약가계부상 약속이었다. 이렇게 3년 동안 공약가계부로 마련되는 재원 이외에 추가로 지출되는 금액은 3조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재정 당국의 계획보다 늘어난 추가 지출액은 24조7,000억원에 달한다. 세입은 줄고 지출은 예상보다 늘다 보니 임기 내에 달성하겠다던 균형 재정도 결국 다음 정권으로 공을 미루게 됐다.
문제는 나라 살림에 대한 결정이 불투명하게 깜깜이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지난해 공약가계부를 발표하면서 재원마련 대책은 매년 경제·재정 여건 변화 등을 반영해 연동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두 번의 예산안을 짜는 동안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공약가계부 작성 이후 두 차례 발표된 중기재정개혁에서도 각각 20조원과 6조원의 지출을 줄였다는 얼개만 내놓았을 뿐 어디서, 어떻게, 얼마를 절감했는지 세부적인 항목들은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예산안을 심의하는 국회는 공약가계부가 일부 수정됐을 것이라는 의혹까지 내놓고 있다. 류환민 국회 기획재정위 수석전문위원은 "기재부가 공약가계부 수정과 관련된 자료를 현재까지 발표한 적이 전혀 없다"면서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비교해보면 세입 확충 및 세입 절감 계획은 일부 조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약속했던 세입 확충 없이 담뱃값 인상으로 부족한 복지재원을 조달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4~2018년 재정전망'에서 담뱃값 인상분으로 걷을 수 있는 12조5,000억원을 제외하면 앞으로 4년간 세수 증대 효과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