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리 전체 수출 가운데 비중이 6%로 단일 국가로는 세 번째로 큰 시장이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물품 가운데 10개 중 1개(11%)가 일본 품목일 만큼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요 교역국이다. 교역 규모가 큰 국가 사이의 무역자유화 수준이 높아지면 양국 모두 이익이라는 국제 무역의 기본 논리에서 보면 사실 일본은 FTA 대상국 중 최우선 순위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일 FTA는 지난 2003년 협상을 시작한 후 1년 만에 협상이 중단됐고 10년 넘게 공식 테이블이 없었다. 한일 관계 악화가 결정적 요인이지만 무역역조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현실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 한국은 이후 10년간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 협상에 주력했다. 일본은 아세안·베트남 등 자국 공산품 수출 확대를 위한 역내 시장에 초점을 맞춰 협상 테이블에서 양국이 맞부딪힐 일이 적었다.
2013년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선 후 이 같은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일본이 경쟁 관계인 EU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 뛰어든데다 한중일 FTA도 동시에 추진해 역내 시장 통합을 위한 주도권을 쥐려 적극적인 통상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이제 우리는 한중일 FTA는 물론 향후 참여가 예상되는 TPP,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도 일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는 일본의 제조업이 우리보다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판단해 양국 간 일대일 협상에 들어가기보다는 중국(한중일)과 미국(TPP) 등 경제 대국을 낀 다자간 협상을 선호하고 있다.
좋든 싫든 일본과 통상 협상을 해야 한다면 국내 산업계에 넓게 퍼진 일본 포비아(공포증)를 걷어내고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최대 교역국 가운데 한 곳인 일본과의 양자 협상을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다"며 "협상 재개 타당성 조사 등을 통해 10년간 바뀐 이해득실을 다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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