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동안 'KEB(외환은행)맨'으로 살아온 김한조(사진) 외환은행장. 그는 요즘 어떤 행장보다 바쁘다. 몸의 고단함은 그래도 참을 수 있다. 마음은 더 복잡하고 온갖 상념으로 날을 새곤 한다.
이유는 하나, 하나은행과의 조기 통합을 가장 앞서서 외쳐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든 자신의 후배들에게 설득력 있게 알려야 하는 탓이다. 어찌 보면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보다도 그의 어깨가 더 무겁다.
그리고 그가 택한 것이 바로 책임 있는 자리에 선 후배들과 진솔하게 얘기하고 '왜 빨리 합쳐야 하는지'에 대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곧바로 지난달 21일부터 불과 열흘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670여명의 본점 부점장과 일선 영업점장들을 만났다. 취임 이후 100일간에 걸쳐 전 영업점을 만나겠다는 계획에 이은 또 다른 강행군이었다.
그가 이 과정에서 입이 닳도록 강조한 단어는 3가지, 바로 '주도권' '(우리의) 선택' '미래'였다. '왜 지금 조기통합을 추진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에 담겨 있다.
통합 예정일인 2017년보다는 조기에 통합하는 것이 조직은 물론, 외환은행 직원들에게도 더 큰 혜택을 가져올 것이라는 뜻이다. 프로 구단이 계약기간이 남았을 때 선수를 트레이드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때문에 자신에 대한 후배들의 섭섭한 심정과 삐딱한 시선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최근 진행한 부점장 미팅에서도 "조기통합을 반대하는 게 멋진 선배로 남는 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통합시점인 2017년이 지나 우리 후배들에게 더 큰 결과물을 쥐어줄 수 있다면 비판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사실 김 행장에게도 쉬운 길은 있다.
조기통합을 반대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고 멋진 선배로 남는 길이다. 30년 넘게 은행원 생활을 했고 자회사(외환캐피탈 사장) 사장을 거쳐 은행장까지 오른 만큼 더 이상 미련도 없다.
하지만 "후배를 버리고 도망가는 바보 같은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부점장들에게 말했다.
김 행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만나서도 "외환캐피탈 사장 때부터 은행통합 논의는 조금 더 일찍, 외환은행 조직원이 주도권을 갖고 시작하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후배들을 만나 조기통합 논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 그리고 감정적 시각이 아닌 미래의 시각으로 냉정히 따져보자고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수익성이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에서 피할 수 있는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현 체제는 서둘러 봉합하는 것이 낫다는 게 김 행장의 생각이다.
김 행장은 8월2일부터 또 한번의 강행군에 나선다. 김 행장은 계룡산 국립공원에서 충청, 부산·울산, 부산·경남 등 5개 지방영업본부 지점장 130명을 만나 조기통합 관련 추가적인 의견수렴에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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