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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이트’, 심령술사와 과학자의 극한 대결

<b>인류의 오랜 의문을 풀기 위한 진실 공방.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b>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심령술과 초능력은 지난 수세기 이상 과학과 대립각을 세워온 존재다. 물적 증거와 합리적 검증을 신봉하는 과학에게 이들은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과학적’과 ‘비과학적’의 경계는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사실 이는 검증 대상의 과학성보다는 과학기술 자체의 검증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도 허언은 아니다.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가 처음 주창한 지동설만 해도 천동설을 믿었던 당대 학자들에 의해 무려 1,400년간이나 부정됐다. 또한 주류 과학계는 지난 150년 이상 다윈의 진화론을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과학적 이론이라 여겨왔지만 최근에는 태초의 원시 생명체가 외계로부터 유입됐다는 리토판스퍼미아(lithopanspermia) 가설도 힘을 얻고 있다. 이 가설은 물에서 생명체가 저절로 탄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화론의 허점을 메워준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어찌 보면 심령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수한 사람들이 영혼과 심령현상을 경험했지만 현대 과학기술로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비과학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레드라이트’는 바로 이런 심령술과 과학, 아니 심령술사와 과학자 사이의 오랜 진실게임을 현실감 넘치게 다룬 영화다.

믿는 자와 의심하는 자

그동안 심령술을 다룬 오컬트 영화들은 대개 영혼, 영매(靈媒), 독심술, 사후세계 등 초자연적 현상을 통한 오싹한 공포 체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엑소시스트, 링, 가위, 데스티네이션, 파라노말 액티비티 등이 모두 그랬다.

하지만 레드라이트는 이들과 차별화된다. 심령술을 혹세무민의 사기술로 확신하는 과학자의 시선에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심령술에는 뭔지 모를 속임수가 있다고 믿으며, 홀로 걷는 밤길에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귀신은 없다고 외치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 셈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천재 물리학자와 세기의 심령술사는 각각 의심하는 자와 믿는 자로 대변된다. 심령술사는 염력과 독심술, 치료술, 텔레파시를 시연하며 눈에 보이는 것을 왜 믿지 못하냐고 항변하고 물리학자는 눈에 보이는 것조차 끊임없이 의심해야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며 과학의 힘을 빌려 사기 비법 규명에 주력한다.

이처럼 심령술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은 허구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전 세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심령현상 연구에 나서고 있다. 191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병리학자 샤를 리셰의 경우 30여년이나 영매 연구에 매달렸다.

레드라이트의 물리학자와 같이 가짜 심령술사와 초능력자들의 눈속임을 밝혀내는 일명 초능력 사냥꾼도 실재한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전직 마술사 출신의 제임스 랜디. 그는 1996년 설립한 제임스랜디교육재단(JREF)을 통해 누구라도 통제된 실험실 환경에서 초능력을 입증하면 100만 달러를 상금으로 지급하는 ‘파라노말 챌린지’를 개최, 돈에 눈이 멀어 도전한 사기꾼 초능력자들을 올킬시켰다. 한때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심령술사였던 유리겔라의 사기극을 밝혀내 조기 은퇴시킨 장본인 역시 랜디다.

레드라이트도 심령술 사기 피해를 막고자 노력했던 그에게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영화다.



오컬트의 백화점

그렇다고 레드라이트가 과학자를 선(善), 심령술사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정의로운 과학자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더 오래 묵고, 근본적인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영혼의 존재나 심령 현상을 믿는가?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영화가 전개되는 순간순간 지금껏 가졌던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귀신을 목도했거나 유체이탈을 경험했다고 그것이 실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혹은 경험하지 못했다고 부정하는 옳은 판단일까. 합리적 판단을 통해 인간의 정신, 즉 혼은 뇌의 정지와 함께 사라진다고 믿으면서도 영혼을 구원 받으려 종교 활동에 열심인 내 모습은 너무 역설적인 게 아닐까. 그리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비과학적이라 단정 짓는 것이 과연 과학적인 사고인지에 이르기까지 복잡다단한 생각의 단편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게 된다.

물론 이 같은 형이상학적 상념들은 그리 골치 아프지 않은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영화 곳곳에 배치된 오컬트 요소들이 수시로 호기심과 재미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레드라이트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초자연적 심령 현상들이 등장한다. 흔한 심령술인 숟가락 구부리기를 비롯해 원인 모를 굉음이 들리는 랩(rap), 물건이 스스로 움직이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폴터가이스트, 염력으로 필름을 감광시켜 사진을 찍는 염사(念寫), 심령 사진, 빙의, 사후세계, 유체이탈, 투시력, 텔레파시, 공중부양 등 가히 오컬트 백화점 수준이다.

마지막으로 팁을 하나 주자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반전 영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주얼 서스펙트에 버금가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 레드라이트 (Red Lights)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레드라이트’는 가짜 심령술과 초능력을 조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은어다. 직역하면 붉은 빛인데 경고의 의미를 가진 신호등의 적신호처럼 심령술사를 빙자해 대중들을 현혹하는 사기꾼에 대한 경고 사인, 다시 말해 심령술과 사기극을 구별하는 결정적 단서를 가리킨다. 영화 속 물리학자와 심리학자는 미행과 잠복수사를 마다하지 않으며 레드라이트를 찾아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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