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대시리아 공습이 당초 예상보다 4~5일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 조사단의 화학무기 사용현장 조사에 3~4일 더 소요되고 공습에 적극적이었던 영국이 국내 정치권의 반발 등을 감안해 '유엔 조사 뒤 군사개입' 방침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다만 다음달 3일부터 시작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을 감안할 때 이전에 군사개입이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현지시간) 영국 및 미국 당국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시리아 공습 방침에는 변화가 없지만 시기가 예정보다 4~5일가량 늦춰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유엔 조사단의 조사완료 시점과 의회 표결을 수용한 영국의 입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무산 등을 감안할 때 시기조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반기문 유엔 총장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 조사단의 현장조사에 4일이 더 필요하다"며 "전문가들이 과학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안보리에 보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영국은 유엔 조사단의 현장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군사개입을 미룬다는 데 이미 동의했다. 전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하원 등의 반발을 감안해 유엔 보고서가 나온 뒤 의회 표결을 거쳐 군사공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28일 열린 유엔 안보리회의도 회의 한 시간여 만에 러시아와 중국 대표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며 끝내 무산됐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형태로 '침묵'했던 지난 2011년 리비아 사태 당시와는 다른 것으로 유엔 차원의 '외교적 중재'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입장은 강경하다. 안보리회의가 파행된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PBS 방송에 출연해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은 정부군의 소행이라는 게 미국의 결론"이라며 "아직 (공격방식을) 결론 짓지는 않았지만 국제사회의 규칙을 어긴 데 따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도 "러시아가 계속 반대한다면 유엔에서 결론(단일안)이 나오기는 어렵다"며 "미국은 협의를 지속해 수일 내 적절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BBC는 "시리아 군사개입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고 꼭 필요하다"는 이스라엘 현지 인터뷰를 전하며 이스라엘의 입김이 미국의 개입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평했다.
미국에서는 다음달 3일 오바마 대통령이 스웨덴 방문을 위해 출국한 뒤 5~6일 모스크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일정을 감안할 때 늦어도 러시아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군사행동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CNN은 미국 관리들이 유엔 조사단에 "늦어도 주말 내에 시리아를 떠나달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조사단의 보고서에 담길 내용도 관심거리다. 유엔은 지난 리비아 사태 당시 인권보호를 위한 '국민보호 책임' 원칙을 첫 적용해 카다피 정권 축출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유엔 보고서가 서구 측의 주장과 동일하게 나올 경우 서구의 군사개입은 보다 큰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주변국들은 서구의 공습이 '초읽기'로 다가오면서 확전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리아 국경은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ㆍ레바논ㆍ터키ㆍ요르단ㆍ이라크 등이 둘러싼 '중동의 화약고'인데다 반군과 정부군의 지역적 경계도 뚜렷하지 않아 확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시리아에는 미국 전투기에 자살공격을 감행하겠다고 다짐한 '가미가제' 파일럿이 13명이나 있다"면서 서구의 시리아 공습이 현실화될 경우 일회성 공격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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