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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이경식 前 한국은행 총재

"제대로 된 진단없인 위기 반복될 것" <br>누구를 희생양 삼으려 하는 사회는 발전 없어<br>당시 투자한도 늘려도 돈 안들어와 위기 예감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이경식 前 한국은행 총재 "제대로 된 진단없인 위기 반복될 것" 누구를 희생양 삼으려 하는 사회는 발전 없어당시 투자한도 늘려도 돈 안들어와 위기 예감 대담=이용웅 경제부장 yyong@sed.co.kr 정리=김민열기자 mykim@sed.co.kr 사진=김동호기자 관련기사 • 김용환 "DJ '換亂극복' 선언 왜 서둘렀는지…" • 김중수 "잠재성장률 저하 가볍게 봐선 안돼" • 최종욱 "제역할 못한 정부·은행·기업 '합작품'" • 유종근 "DJ불신에 美와 외채협상 제일 힘들어" • 이연수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 • 정덕구 "대선 휘말려 신종 경제위기 올까 걱정" • 위성복 "기업 사정 모른채 구조조정 밀어붙여" • 손병두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일부 책임있다" • 김대송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 • 이용득 "관치금융이 환란 부른 결정적 요인" • 강봉균 "대우, 구조조정 서둘렀으면 해체 안돼" “(IMF 10년이 지났지만)지금도 아침에 일어나서도, 산에 갈 때도 (그때)어떻게 했으면 좀 더 잘했을지 생각한다. ‘먼데이 모닝 쿼터백(주말에 벌어진 미식축구 결과를 놓고 월요일 오전 사람들이 모여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이란 말이 있지 않나. 조금 더 멀리 던질걸, 미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여러 모로 후회가 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속에 문민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거쳐 외환위기 전후(1995년8월~1998년3월) 3년여 동안 한국은행 총재를 맡았던 이경식(73ㆍ사진) 전 총재. 그는 환란위기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외환위기 10년 가까이 언론과의 접촉을 일체 하지 않았던 그를 어렵게 설득한 끝에 최근 한국은행 강남지점 고문실에서 만났다. 그는 안색이 좋아 보인다는 인사에 “가급적 골치 아픈 생각은 안하고 안 보려고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전 총재는 인터뷰 동안 ‘먼데이 모닝 쿼터백’이라는 말을 수 차례 되풀이 했다. 누가 당시 경제를 책임졌다면 외환위기를 겪지 않았겠느냐는 반문도 했다. 그는 “외환위기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잘못을 따져 나가야지 넘어진 몇 명을 밟는다고 해결이 되겠느냐”며 “힘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똑같이 비판해야 된다”며 세간의 평가에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러한 그의 말 곳곳에는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를 진두지휘하다 환란의 주역으로 내몰린 ‘3인방’의 한 사람으로써 갖고 있는 회환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 전 총재는 “(외환위기) 이후에도 카드채 사건 등이 생기고 요즘도 밖이 약해지면 (경제가) 흔들리는 것은 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모르기 때문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우리를 그렇게 비난해도 외환위기에 대한 백서 한 권 제대로 나온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외환위기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겠느냐”며 한국경제에 대한 걱정으로 두시간여에 걸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내년이 IMF 10년인데 외환위기가 왜 왔다고 보는가. ▦우리 돈으로만 사업을 했으면 안에서 파탄은 났겠지만 외환위기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 경제나 개인 살림이나 똑같다. 자기가 잘 벌고 그 범위 내에서 쓰면 무슨 일이 있어도 부도는 나지 않는다. 그런데 외국에서 무리하게 돈을 끌어 쓰며 우리 힘에 버겁게 경제를 운용해왔다. 상황이 악화되자 우리가 빌렸던 것(채무)을 (외국 채권단이) 일제히 빼 가면서 환(煥) 위기가 난 것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잘 대응했으면 좀 나았겠지만 이를 못했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맞았다. -실력에 걸맞지 않는 차입경영을 한 것은 OECD 가입 때문인가. ▦차입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도 안 하려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OECD에 가입한 96년 당시 미국, 유럽, 남아프리카 등 세계 경제는 좋지 않았다. 잘 되는 곳은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아시아 뿐이었다. 그 때문에 아시아로 돈이 쏟아졌다. 돈을 못 빌려줘 안달하는 투자은행(IB)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잉위험을 말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중앙은행을 두고 “비 안 올 때도 우산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사람들 눈으로 볼 때 (차입규모가) 잠재성장률 보다 과도하다고 걱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자율을 높여 가자고 기업에게 말하면 중앙은행이 좀 되려고 하는데 재를 뿌린다고 난리를 쳤다. 기업인들하고도 많이 싸웠다. 한은 총재 되고 나서 최종현(당시 전경련 회장) 하고는 아예 말도 안 할 정도로 틀어졌다. 시장에서 과열기미가 있어 금리도 올리고 통화량을 줄여야 한다고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다. -요즘 환율이 900원대 초반으로 떨어지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당시 800원대였는데. ▦10년이 지났는데 물가가 아무리 안정됐다고 해도 30%이상은 올라갔을 것이고 지금 환율은 훨씬 높아야 된다. 당시 환율은 적정했지만 기업들은 언제나 더 높아야 된다고 말했다. 당시 환율을 고평가 한다고 수도 없이 공박을 당했다. 균형시점 환율이라는 것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지만, 무역수지가 균형을 이룬 것이 93년 이었으니 적정환율로 봐야 된다. 기업 사정을 봐주기 위해 환율을 자꾸 올려주면 언제 경쟁력이 강화되겠는가. 가능한 조금만 올려주되 기업의 내실을 다져나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날 보고 환율 안 올렸다고 공박하는 사람들이 요새 힘쓰는 사람들인데 지금 뭐하나. 당시와 달리 밴드도 없는데 (환율을) 못 올리고 있지 않느냐. 기본적으로 환율은 달러수급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이 되는 것이다. 일본은 비슷한 환율을 10여년간 유지하면서 고도성장을 해왔다. 어렵다고 환율을 올리면 기업 내실은 커질 재주가 없는 것이다. 어려워도 경쟁력을 다져야 한다. -97년 환율이 너무 올라 갖고 있는 외환보유고를 다 썼다는 속설도 있는데. ▦그때 달러를 쓴 것은 밖에서 은행이 빌릴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연장이 안되니 부도를 낼 수도 없고 해서 빌려준 것이다. 밤12시에 제일은행에 몇천만불씩 줄 정도였다. 현실은 모르고 결과만 갖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국제수지는 적자가 나고 달러는 모자라는데 (중앙은행이)환율만 붙들어 매려고 달러를 내다 팔아 외환보유고 소진했다고 지적한다. 나중에 시장에서 몇 십원씩 뛰려고 할 때는 그렇게(시장개입)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은행들이 돈을 못 갚아 부도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했다. -외환위기 다가오고 금융개혁법안 할 때 한은 노조에서 데모도 많이 했는데 ▦한은 사람 90%이상이 불신임 할 정도로 나를 몹시 미워했다. 오죽했으면 그만둔 뒤에 2~3년동안 사진 조차 걸지 않았겠는가. 한은 사람들이 날 미워한 것을 이해한다. 내가 한은 직원이었어도 총재를 배척했을 것이다. 금융개혁법안의 핵심은 금감원을 떼내는 대신에 금통위는 한은이 맡는 것이었다. 한은 사람들은 통화정책과 감독권 두개 모두를 가지고 싶어했다. 만약 두개 가운데 하나를 택한다면 감독권을 가지려고 했다. 나는 욕을 먹더라도 중앙은행의 독립을 위해 통화정책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중앙은행이라면 적어도 금리정책만큼은 독자적으로 해야 한다. 누가 이익을 보느냐는 둘째 문제이고 사사건건 싸우는 재경원과 한은의 싸움은 끝내야 했다. 요즘 아쉬운 것은 건전성 감독을 조금만 더 이야기해서 (한은에) 무게를 실었으면 직원들도 크게 반발하지 않았을텐데, 김인호(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보고 뭐라고 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 점이 아쉽다. -외환위기 직전까지도 IMF 갈지 몰랐나. 한은이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서를 올렸다는데. ▦외환위기를 감지한 것이 11월 3~4일 정도다. 당시 주식 한도를 외국인에게 확대했는데 과거 같으면 돈이 들어왔을 것이다. 돈을 넣는다는 것이 한국경제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한푼도 안 들어오고 빠져나가기만 했다. 빚쟁이들이 우리경제에 대해 등을 돌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환보유고 100억~200억달러로는 견딜 수 없었다. 한은이 먼저 보고를 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과거 어느 때보다 (재경부와 한은이)같이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럴 리가 없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2~3일이라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96년 단기외채가 엄청나게 들어왔을 때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더 강화해야 했던 것 아닌가. ▦솔직히 한은 총재가 할 수 있는 여력이 별로 없다. 한은 산하에 금융감독원장 누구였나. 지금도 뻔히 알면서 손 안 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켜보면서 하려고 했지만 손대면 국민 경제가 휘청거릴 수도 있다. 조그마한 것은 건드리기 쉬운데 기본적인 것은 겁난다. 물론 사명감을 갖고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은 옳다. 하지만 죽는다고 각오를 해야 할 수 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임창렬씨가 IMF행을 뒤집는 바람에 조건이 악화됐다는 지적이 있다. ▦강경식 장관이 루빈, 일본 대장성한테 모두 도와달라고 했다. 상대방은 한국 정부가 (IMF)갈려는 의지가 확실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임 장관이 갑자기 IMF에 가지않고 해결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국제적 신인도를 잃어버린 계기였다. 하루 이틀 늦어진다고 무슨 큰 문제가 생기겠는가. 문제는 사람이 바뀌니까 안 가겠다고 했던 것이다. 지금도 임창렬씨가 왜 부인했는지 모르겠다. YS 리더십에 대해서는 반대로 물어보겠다. 그 당시 누가 대통령을 하고 경제수석과 한은 총재를 맡았으면 위기를 면할 수 있었겠는가. 현재와 절대선상에서 놓고 비교하는데, 나보다 전임이나 후임자를 모두 대입 해보면 답이 나올 것 아닌가. 그때 인력이 그 수준밖에 안되는 데 지금 와서 가정을 하면 곤란하다. -외환위기 극복과정을 지켜봤는데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외환위기사태를 왜 이런 식으로 평가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놈을 밟아서 덕을 보는 식으로 다루면 곤란하다. 근본적으로 잘잘못을 따져야만 다음에 이런 사태를 당하지 않는다.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에 크나 큰 교훈이다. 외환위기 이후에도 카드채(2002년 신용카드 사태) 위기를 겪었으며 요새도 밖이 약해지면 흔들거린다. 물론 카드채 사건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내부적인 문제이고 외환위기는 우리 맘대로 못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같다. 한국 경제를 5~6개월 동안 3명(강경식ㆍ김인호ㆍ이경식)이 모두 망쳐먹을 수 있겠는가. 망쳤다면 살릴 수도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인데 그건 아니었다. 경제환경이 엄청나게 나빠진 것은 말하지 않고 그 과정에 있었던 사람만 갖고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외환위기 때 죄지은 사람이라 입이 몇십개 있어도 말을 못한다. 이후에도 내 근처에 오는 것을 금기시하는 정도다. -YS에 대한 비판이 많은데. ▦과거 대통령 중에서 칭찬 받는 사람이 있는가. YS를 대통령 시킨 것은 민주화 하기 위한 것이지 경제 잘한다고 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만하면 됐지 국민들이 경제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한다. DJ는 경제에 대해 얼마나 잘 했는가. 환란위기를 빨리 극복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 막아놓았던 것을 터트려서 한 것 아닌가. 진정한 의미에서 위기 극복이고 경제체질의 강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10년이 지났는데 회의적인 게 많다. YS를 비롯, 강경식, 이경식, 김인호 치는 것은 좋다. 그렇다면 그 후에도 똑 같은 강도로 쳐야 된다. 힘있는 사람은 안치고 힘없는 사람만 하면 안 된다. 그 당시 정책 당국과 기업한 사람, 기아를 국민기업이라고 옹호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응당하게 책임을 물어야 된다. 그렇게 평가를 안 하니 진정한 원인을 모르게 되고 10년 뒤에도 위기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요즘 부동산 버블과 이로 인한 또 다른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너무 자신없이 과민하게 대응하는 것 같다. 당장 욕을 먹더라도 공급 늘리는 방안을 써가면서 가격은 시장에 맡겨 놓으면 2~3년 뒤에는 정착될 것이다. (현)정부는 시장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내가 사무관 할 때도 어려웠는데 지금 가능하겠는가. 정부가 강남은 떨어뜨리고 농촌을 올릴 수 있겠는가. (정부가)모두 사주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부동산이 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은행 돈을 빌려 집을 사는 것만 막으면 된다. 사람들이 일본 버블과 비교하는데 일본버블이 경제에 10년 가까이 타격을 입힌 것은 은행이 부동산에 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은행이 망하면 금융도 무너지고 급기야 경제까지 휘청거린다. 집값 뛰는 것이 은행대출에 영향만 안주면 괜찮다. 부동산 업자 망하는 것이 금융시스템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은행대출에서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다한 것은 어떻게 보나. ▦주택 대출이라고 해서 꼭 집 사는데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중소 기업들이 힘들다 보니 자기 아파트를 담보로 얻어 돈을 쓰고, 은행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자꾸 빌려준다. 부동산 구입 대출이 아닌 부동산을 담보로 무한정 대출을 하는 것이 문제다. 정부는 공급을 더 많이 늘리는 방향으로 나가고 가격이 얼마인지는 시장에 맡겨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재건축하는데 건평을 높이는 게 무슨 큰 문제냐. 그 다음에 부동산 오르는 것을 정책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한미 FTA는 어떻게 평가하나. ▦준비가 잘 됐는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는 다음 문제다. 혼인할 때 베개랑 몇 가지만 된다. 문제는 FTA 하면 농촌이나 경쟁력 적은 곳은 모두 손해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가 덜 됐다 이유를 드는 것이다. 우리처럼 준비를 많이 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 FTA는 결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경쟁력이 없는 것을 끌고 가서 어떻게 우리가 견디겠느냐. 우리 좋은 것은 팔려고 하고 불리한 것은 막으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이경식 前 한국은행 총재 약력 ▦33년 경북 의성 출생 ▦대구 영남고ㆍ고려대 상대 졸업 ▦57년 한국은행 입행 ▦62~69년 경제기획원 과장 ▦72년 대통령 비서실장보좌관 ▦76~79년 체신부 차관 ▦79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80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 ▦85년 대우통신 사장 ▦85년 21세기경영인클럽 회장 ▦87년 대우투자금융 사장 ▦87년 대우자동차 사장 ▦89년 금융통화운영위원 ▦91년 한국가스공사 사장 ▦93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95~98년 한국은행 총재 입력시간 : 2006/12/1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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