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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기업 '점령군' 이미지 벗으려 1년전 내부 출신 중용했지만
이질적 조직 통합 이루지 못해
쇄신위 구성 발표한지 2주만에 미얀마 가스전 매각 항명사태로
지난해 2월 당시 내정자 신분이었던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포스코건설과 더불어 주요 계열사인 대우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CEO)로 전병일 현 사장을 낙점했다. 2010년 포스코가 대우인터를 인수할 당시부터 경영을 맡아온 포스코 출신의 이동희 부회장은 자연스럽게 일선에서 물러났다.
포스코와 대우인터는 철강과 종합상사라는 업종의 성격도 달랐고 각각 오랜 역사를 통해 기업 고유의 색깔이 확실해 좀처럼 융합이 쉽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대우인터 내부출신인 전 사장을 대표에 올리며 중용한 것은 대우인터 임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포스코의 '점령군'의 이미지를 털어내 그룹 계열사 간 통합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분석됐다.
1977년 대우중공업에서 첫 회사생활을 시작한 전 사장은 대우인터내셔널 영업2부문장 등을 거친 영업통이자 정통 '대우맨'으로 회사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상사는 종합상사 전문가에 맡긴다는 권 회장의 전략은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대우인터는 올 1·4분기 전년동기 대비 2배에 가까운 1,10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포스코그룹 전체 실적에도 이바지했다.
전 사장의 '대우맨' 정신은 대우인터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주효했지만 결과적으로 모그룹인 포스코와 멀어지는 사건의 실마리가 됐다.
특히 권오준 회장 취임 이후 치열하게 진행돼온 구조조정 작업은 내부에 갈등의 싹을 조금씩 키워 왔다.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이전 정권부터 이어져온 인수합병(M&A)이 정치적으로 진행돼온 측면이 있고, 이질적인 집단이 한데 묶이면서 짧은 시간 동화되기 힘들었다"며 "구조조정이 이어지다 보니 화학적 결합이 이뤄진 조직들 사이의 상처가 곪아 터진 것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M&A를 통해 엮인 계열사 임원과 조직원들의 구조조정 피로감이 서서히 파국으로 이어진 셈이다.
지난달 22일 포스코가 자회사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미얀마 가스전 매각을 검토한 문건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그 시발점이었다.
문건이 나오자 즉각 대우인터 직원들은 동요했다. 미얀마 가스전은 앞으로 25년 이상 매년 3,000억원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 줄 대우인터의 알짜 자산으로 이를 매각한다면 대우인터의 기업가치가 크게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전 사장은 나흘 뒤인 26일 오후 사내게시판에 '포스코 구조조정은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방향이 옳다', '미얀마 가스전 매각은 실리·현실성이 없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직원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였고 대우인터 사장으로서 당연한 판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포스코 그룹의 인식은 달랐다. 그룹 계열사 사장의 지위는 잊은 채 오로지 대우인터만을 생각한 것으로 '포스코를 제외한 모든 계열사가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취지에도 정면으로 배치됐다는 것이다.
특히 전 사장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한 것에 대해 포스코 수뇌부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포스코건설에 대한 검찰 수사와 계열사 실적 부진 등으로 이미지가 추락하자 지난달 14일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꾸리고 모든 사내이사와 계열사 사장이 사표를 내는 고강도 쇄신에 나섰다. 그러나 쇄신위를 구성한 지 2주도 안돼 집안 내 갈등이 바깥에 알려지며 쇄신 작업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다.
일부에서는 전 사장이 계열사 사장 전원 사의를 표시한 직후 작심하고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어차피 사표가 수리될 것이고, 차제에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하면서 후배들의 기를 살리겠다는 뜻을 표출했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정치적 M&A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는지 다시 한번 보여주고 말았다"며 "다른 계열사 조직원들까지 동요가 확산될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권오준 회장도 사석에서 임원들에게 답답함과 함께 이같은 우려를 깊게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됐든 포스코는 예정보다 빠른 속도로 전 사장의 사표를 수리(해임)하는 등 이번 사태를 서둘러 진화하고 쇄신 작업을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전 사장 후임에는 김영상 대우인터 철강본부장(부사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 선정을 두고 포스코 출신을 다시 임명하는 안도 검토됐지만 대우인터 직원들을 안심시키고 그룹차원의 화합과 시너지에 주력하겠다는 뜻에서 대우인터 출신인 김 부사장을 내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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